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을 총괄해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물러났다.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임대차 신고제) 시행 직전 전셋값 인상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전격 교체다. 정책 실패, 여당과의 불협화음 등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변함 없는 신임을 받았지만 정권 최대 ‘역린’으로 꼽히는 부동산 ‘내로남불’에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경질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하루 전 전셋값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청와대는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는 분위기였다. 김 실장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금호동 아파트의 전셋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올린 것이고, 여전히 청담동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라도 법 시행 이틀 전 본인 소유 주택의 전세 보증금을 대폭 인상한 계약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30년 된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등 물욕 없는 이미지로 각인돼온 김 실장이어서 국민의 배신감은 더 컸다. 김 전 실장은 어쩔 수 없이 전셋값을 올렸다고 해명했지만 예금만 14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김 실장은 전날 밤 유 실장에게 사의를 밝혔고, 이날 아침 대통령에게도 직접 보고했다.
김 실장 사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고, 백신 접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김 실장이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 최장수 정책실장이다. 2019년 6월부터 지금까지 21개월 근무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18개월), 김수현 전 정책실장(7개월)보다 길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입김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지원금 등에서 다른 입장을 보여온 김 실장의 교체를 계속 요구해왔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이 실장은 기존과는 다른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4 대책’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선보인 주택 공급 기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및 세금 관련 규제가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다양한 정책을 섭렵한, 경험 있는 인물로 시장을 안정시킬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영연/노경목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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