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1.25913775.1.jpg)
CU의 말레이시아 진출은 한류의 확산과 CU의 글로벌 역량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CU가 몽골에서 써클K를 제치고 매장을 110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에 말레이시아 파트너사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말레이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활용해 만년 2위 자리를 넘어서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몽골의 경우 일본계인 써클K가 CU보다 먼저 들어갔지만 매장 수가 20여 개에 불과하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1.25913788.1.jpg)
마이뉴스홀딩스로부터 작년 5월 제휴 제안이 들어온 이후 양측의 협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마이뉴스홀딩스의 주요 관계자들이 서울로 날아왔다. 그들은 이익 배분 등 재무적인 사항 외에 딱 한 가지를 충족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상품, 서비스, 공간 구성까지 한국에 있는 CU와 최대한 똑같이 구현해달라”. TV 속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편의점 풍경을 그대로 이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실제 말레이시아 CU 1호점은 상품 구색에서도 한국산이 약 60%를 차지한다. CU의 인기 PB상품 외에도 한국의 유명 상품과 중소기업 우수 제품들로 가득 채웠다. 오뎅, 떡볶이, 닭강정, 빙수 등 다양한 한국 길거리 음식들도 즉석조리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일반적으로 해외 진출 시 현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과 상반된 전략이다. CU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에 자리잡은 일본 편의점 문화와 차별화 하고 최근 K-컬쳐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국 편의점만의 역발상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104/01.25913777.1.jpg)
88 올림픽과 함께 문을 연 세븐일레븐 1호점엔 걸프, 슬러피(슬러시), 빅바이트 등 난생 처음 보는 상품들이 즐비했다. 대형 종이컵에 탄산음료를 담아 먹는 ‘걸프’와 입맛대로 소비자들이 핫도그 등을 해 먹는 ‘빅바이트’는 국내에서도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전후로 편의점이 대중화되면서 국내 편의점은 일본 모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삼각김밥은 일본인의 ‘소울 푸드’로 불리는 오니기리에 김을 씌운 음식이다. 도시락 등 각종 간편식도 일본 편의점을 따랐다. 메뉴 구성에선 한·일 양국의 식문화가 반영되긴 했지만, 식탁 음식을 간편하게 먹는다는 점에서 개념은 동일했다. 당시만 해도 CU는 패밀리마트와 결별 전이었다.
BGF리테일이 2012년 6월 패밀리마트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국내 편의점 업계는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GS리테일의 GS25가 CU와 선의의 경쟁을 펼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2012년 7300였던 CU 매장수가 1일 현재 약 1만5000개로 두 배 가량 증가했으니, BGF리테일의 선택은 선견지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일본 편의점 업체들은 한국 편의점의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노하우를 차용하고 있다. 1990년대 국내에 편의점이 도입되던 초기, 한국에 훈수를 두던 일본이 오히려 지금은 한국 편의점에서 한 수 배워가는 상황이다.
편의점 내 테이블 설치가 대표적이다. CU는 패밀리마트와 결별 직후인 2012년부터 국내 최초로 편의점 안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휴게공간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잠깐 들러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닌 ‘생활 속 쉼터’로서 고객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해외(일본)에서 들여온 천편일률적인 편의점 모델을 벗고,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한국형 편의점의 탄생을 의미했다.
효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좌식 테이블을 설치함으로써 기존에 꽉 막혀 있던 점포 전면을 통유리로 개방할 수 있게 됐고,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손님들이 늘었다. 도입 당시 해당 점포들의 평균 일매출이 16.8% 늘어났다.
일본 편의점은 아직까지도 점포 내에서 음식을 취식하지 못하는 편의점들이 많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메이와쿠' 문화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온수와 전자레인지는 제공하지만 도시락, 컵라면 등은 밖에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품 진열도 공급자 위주다. 편의점은 필요한 물건만 바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간주됐다.
최근엔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 등 일본 편의점들도 시식대에 의자를 두거나 테이블을 하나 둘 놓기 시작했다. 기존 서적과 서비스 코너 등이 자리했던 창가 자리에 테이블을 두고 고객이 쉬거나 취식할 수 공간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상품으로만 승부하던 일본 편의점들도 한국 편의점만의 특색 있는 공간 연출로 고객 유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배달 서비스도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편의점 문화다. CU는 2019년 4월 업계 최초로 배달앱 요기요와 함께 편의점 배달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전국 6000 여 운영 점포를 보유하여 업계에서 가장 촘촘한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있다. 도심 주요 지역 24시간 배달은 물론 지방 소도시 읍·면 단위까지 가능하다.
최근 일본 편의점들도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오피스 입지를 중심으로 한국 편의점의 근거리 배달 및 쇼핑 서비스를 따라하는 추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세븐일레븐은 지난해부터 점포에서 고객에게 상품을 직접 배송하는 ‘스피드 택배'를 시작했다. 도쿄 시내 100개 점포를 시작으로 2021년 이후 최소 1000개 이상으로 배송 가능한 점포수를 늘릴 방침이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편의점들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동식 편의점을 운영했다. 그동안 일본 편의점은 2010년대 초반부터 판매 시설을 갖춘 편의점 트럭을 고령자 등 쇼핑 약자들이 거주하는 일부 외곽지역에서 운영해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일본 편의점도 최근 아마존, 라쿠텐 등 e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편의점들처럼 모바일 등을 활용한 O2O 쇼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간의 CVS 운용 시스템의 노하우를 총결합한 글로벌 시스템이다. 파트너사의 대규모 전산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고 CU 역시 해외 사업에 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도 POS(점포 판매시스템), PDA를 활용한 업무 처리 등을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얘기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이번 말레이시아에 이어 몽골 사업, 추후 진행될 국가까지 관련 시스템을 일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U는 2018년 4월 업계 최초로 주간에는 유인(有人), 야간에는 무인(無人)으로 병행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편의점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엔 최첨단 안면인식 결제 기술을 활용한 미래형 무인 편의점 ‘테크 프렌들리(Tech Friendly) CU’도 오픈했다. 이는 점포 여건에 따라 24시간 운영과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IT 기술로 극복한 사례다. CU의 말레이시아 진출은 한류의 세계화를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편의점 IT의 수출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