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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말이 없다. 하지만 부지런하다. 땅속에서 움을 틔워 싹을 돋아내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 뒤 소멸할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다.
하찮은 풀 한 포기일지라도 식물의 삶과 죽음은 우리의 그것과 닮았다. 때가 되면 물을 적셔야 하고, 적당한 빛과 공기를 만나야 한다. 때론 잡초를 뽑아내거나 땅을 갈아엎어야만 살 수 있다. 오래 머물렀던 삶의 터전을 옮기거나 환경을 바꿔줘야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어쩌면 식물을 돌보는 일은 가장 성실하고, 가장 창의적인 동시에 파괴적이다. 이 파괴는 성장을 위한 ‘필연적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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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화가들은 예술적 영감을 정원에서 빌렸다. 인상파 화가에서 추상 화가까지 세계적 거장들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정원 가꾸기를 함께했다. 앙리 마티스는 파리 교외에 정원을 만들어 작업실을 정원 안에 지었다. 다채로운 빛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였다. 폴 고갱은 북아프리카와 남태평양 제도의 이국적 정원에서 예술의 영감을 얻었다. 굴곡 많은 삶을 산 프리다 칼로에겐 바깥 세상으로부터 위로받으며 삶과 예술을 지속할 수 있게 한 ‘푸른 집의 정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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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역시 작은 정원과 대자연의 정원을 오가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 등 추상미술의 거장,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정원에서 창조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이들은 “땅에서부터 나무 곳곳으로 뻗어가는 수액처럼 정원을 보면 몸 안에 창조성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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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정원에서 수백 점의 걸작이 탄생한 까닭은 식물이 갖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 때문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행위처럼 보이는 식물을 기르는 일은 그 자체로 삶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무한의 감각들을 깨운다. 플랜테리어로 나의 공간을 꾸미고, 화분 하나를 진심으로 돌본 사람은 안다. 식물과 함께하는 일상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세상의 변화에 집중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식물을 우리 곁에 두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렇게 예술이 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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