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요리 대부 곡금초 씨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1952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난 곡씨는 당시 청요리집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16세 때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서울 소공동 물만두집 일품향의 ‘홀 보이’로 시작해 서울시청 근처 ‘금문도’에서 주방 일을 익혔다. 대려도, 태화관, 지상각, 아리산, 국빈, 하림각 등 서울 시내의 고급 중국요리집을 모두 거치며 제자를 양성했다.
27세 때 서울 신촌 만다린에서 12명의 조리사를 거느린 총주방장으로 일했다. 그는 2009년 경기 화성시 동탄에 ‘상해루’를 열고 최근까지 주방을 지켰다. 50년 넘게 중화요리 외길을 걸어온 그는 스스로 “칼에는 소질이 없지만 불을 다루는 게 평생 좋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중화요리 대부 곡금초 씨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1952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난 곡씨는 당시 청요리집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16세 때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서울 소공동 물만두집 일품향의 ‘홀 보이’로 시작해 서울시청 근처 ‘금문도’에서 주방 일을 익혔다. 대려도, 태화관, 지상각, 아리산, 국빈, 하림각 등 서울 시내의 고급 중국요리집을 모두 거치며 제자를 양성했다.
27세 때 서울 신촌 만다린에서 12명의 조리사를 거느린 총주방장으로 일했다. 그는 2009년 경기 화성시 동탄에 ‘상해루’를 열고 최근까지 주방을 지켰다. 50년 넘게 중화요리 외길을 걸어온 그는 스스로 “칼에는 소질이 없지만 불을 다루는 게 평생 좋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