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방송된 KBS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서 주인공 풍상 씨(유준상)가 간암에 걸리자 동생들이 간이식을 거부하는 모습이 그려져 이목을 끈 바 있다.
간이식은 급성, 만성 간 부전 및 간암 환자들을 위한 희망의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식 대기자에 비해 장기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같은 경우 '풍상씨' 이야기 처럼 가족 기증을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수술로 기증자의 남은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간이식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네티즌 A 씨도 최근 아버지 B 씨로부터 간이식 기증을 요청받고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아버지에 대해 "어릴 적 바람이 나서 우리 가족을 버리고 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A 씨 가족은 수년째 아버지 B 씨와의 연락을 원천 차단한 상태였다. 얼마 전 아버지는 A 씨에게 "죽기 전에 사과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A 씨는 "죽을 때까지 연락 안 받을 거고, 그게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힘들게 가족을 지탱해온 엄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음을 거론하니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버지의 행색은 초라했다. 눈물을 흘리며 A 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벌을 받는 것 같다"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아버지가 원한 건 간이식이였다. "간이식 안 하면 죽는다는데 어떡하니. 한 번만 도와줘."
A 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시 사람 천성은 안 바뀌는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간이식 안 해주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 B 씨는 "네가 거부하면 네 동생한테 연락해 봐야지"라고 말했다. A 씨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A 씨는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게 절대로 간이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는 "제가 천벌을 받는다고 할지언정 아빠에게 복수 하고, 가족들 모르게 제 선에서 끝내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괜히 동생에게 알렸다가 마음 흔들려서 간이식해 주겠다고 할 것 같다. 지금 심정으로 하겠다고 날짜 잡고 연락처 바꿔서 잠수 타고 싶은 지경"이라며 분노했다.
한 네티즌은 "제일 건강한 나이에 가정에 헌신한 엄마에게 신장 이식을 했었다. 진짜 5년 정도는 조금만 무리하고 피곤해서 힘들었다. 간 이식은 더 힘들다고 들었다. A 씨가 이식을 거부해도 아무도 나쁘다고 생각 안 할 거다. 딱 잘라 안된다고 거절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어머니에게 간이식을 했었다면서 "제 의지로 검사를 받고 수술을 했는데도 수술 이후 건강염려증이 생기고, 약간의 우울증도 있다. 건강을 되찾은 엄마에게 도리어 섭섭한 일들을 쏟아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은 "정상적인 부모라면 간이식보다 자식의 건강을 생각할 것", "키우지도 않아놓고 당연히 간이식 이야기 꺼내는 사람은 부모도 아니다", "수술 직전에 말 바꾸는 식의 적극적인 복수는 의료진에게도 민폐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증오의 감정은 폭발시킨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는다. 동생에게 미리 이야기 하고 매정하다 생각할지라도 연락을 딱 끊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경은 작가는 저서 '나는 생존기증자의 아내입니다'를 통해 12시간 동안 생존기증자들이 수술을 결정해야 하는 고뇌를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그는 "간이식을 해드린 어머니는 회복됐지만 기증자인 남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안장애,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자기 간을 떼어내는 것보다 수술을 거부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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