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이 되면 공소사실이 적힌 공소장은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 절차에 따라 전문이 공개돼왔다. 작년 2월 여권에 민감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때 공소장 비공개 원칙이 도입되기 전까진 그랬다.
법무부가 국회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일각에선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선거 개입 정황이 공소장에 상세히 적혀 있기 때문에 비공개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켕기는 게 있어 그런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법무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첫 공식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공소장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여태껏 고수하고 있다.
최 회장의 첫 공판기일은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아직 공판준비기일만 진행됐을 뿐 정식 공판기일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언론 보도와 단편적 공시 정보 등이 전부다.
이 재판으로 기업 가치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내가 투자한 기업 회장이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지, 해당 혐의에는 어떤 기업이 또 연루돼 있으며 무슨 상황에 얽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첫 재판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나마 최 회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사건을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뜻을 밝혀 공식재판이 이달 안에 잡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미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정보 격차가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력자들이야 사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공소장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개미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나마 큰 기업은 언론이 어떻게든 취재하겠지만 작은 기업에 투자한 개미들은 더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소장 공개는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 기소된 뒤 공개되던 관행을 무리하게 깨면서까지 도입된 공소장 비공개 원칙이 권력자와 그렇지 않은 소액투자자의 정보 격차만 벌린다면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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