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요건 완화…난감한 코스닥

입력 2021-04-05 15:04   수정 2021-04-05 15:06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 요건이 완화되면서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와 코스닥시장본부 간 상장 유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미 여러 특례상장 제도를 갖추고 있는 코스닥시장본부는 새로 내놓을 카드가 많지 않아 고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을 개정해 요건을 완화했다. 시가총액이 1조원만 넘으면 다른 재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증시에 상장할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 ‘시가총액 6000억원·자기자본 2000억원 이상’ 요건도 ‘시총 5000억원·자기자본 1500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상장 요건에는 여러 기준이 있는데, 상장 추진 기업은 이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상장 요건 완화는 미래 성장기업들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쿠팡의 미국 뉴욕증시 상장에 이어 컬리(마켓컬리), 야놀자, 스마트스터디(핑크퐁), 더블다운인터액티브 등이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난감해진 건 코스닥시장본부다. 코스닥시장은 그동안 ‘한국판 나스닥’을 표방하며 미래 성장기업 유치에 힘써왔다. 하지만 대형 기업들은 주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택하고,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기업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는 등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2017년만 해도 스튜디오드래곤, 티슈진, 셀트리온헬스케어, 제일홀딩스(현 하림지주) 등 공모 규모 2000억원 이상 중대형 기업공개(IPO)를 여럿 유치했지만 그 이후엔 카카오게임즈(2020년) 단 한 곳에 그쳤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요건이 완화되면서 유망 기업들의 유가증권시장행(行)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최근 기업들의 상장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유가증권시장본부 상장심사팀에 시총 1조원 요건 등 완화된 기준으로 상장할 수 있는지 묻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코스닥시장 상장을 노렸던 전자상거래업체 티몬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은 지난 2월 3050억원을 유상증자했지만 여러 해 동안 적자가 누적돼 자본총계가 여전히 -2000억원대다. 기존 상장 요건으로는 유가증권시장 입성이 불가능했지만 시총 단독 요건이 생기면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됐다.

티몬의 기업가치는 현재 2조원대로 평가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본잠식 기업도 기본 요건인 공모 후 자기자본 300억원 이상 기준만 넘으면 된다”며 “질적 심사가 남아 있지만 티몬 같은 기업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천보와 에코프로비엠, 올해 상장한 네오이뮨텍 등도 현재 기준으론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가능하다.

코스닥시장본부는 내부적으로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다만 이미 여러 특례 제도를 갖추고 있어 새로운 대응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고민이다. 코스닥시장은 2005년 처음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시행된 뒤 2016년 성장성 추천 및 이익미실현 기업 특례(테슬라 요건), 2017년 사업기반 모델 특례, 2019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특례 등을 도입했다.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고민은 하고 있지만 방안이 구체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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