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5·6 공급 대책’ 등 세 차례의 부동산대책을 통해 야심차게 제시한 서울 도심 내 주택 공급이 포문을 열었다. 공공이 아예 땅을 사들여 개발을 주도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과 시행사로 참여하는 ‘공공재개발’ 등 모두 공공이 중심이 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후보지에서만 각각 2만5000여 가구씩 총 5만여 가구를 서울 도심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시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는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사업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서울시장이 민간 개발사업 규제를 완화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진 것도 변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얼마나 빨리 신뢰를 회복해 공공 주도 개발의 성공사례를 내놓는지에 따라 서울의 집값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후보지는 크게 저층 주거지(10곳), 역세권(9곳), 준공업지역(2곳)으로 나뉜다. 21곳 중 은평구가 9곳(1만2000가구)으로 가장 많다. △도봉구 7곳(4400가구) △영등포구 4곳(7500가구) △금천구 1곳(1300가구) 순이다. 역세권 중 가장 규모가 큰 영등포 역세권(9만5000㎡)에선 2580가구 공급 방안을 내놨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5만1497㎡)에서도 1253가구 규모의 대단지 공급이 가능하다. 신길뉴타운 중심부에 있는 신길동 저층 주거지(옛 신길4구역)에는 근린공원, 상업시설이 포함된 1199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선도사업지 21곳의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용적률이 민간 재개발 사업보다 111%포인트 높아지고 가구 수는 1.4배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세부 사업계획안을 수립한 뒤 오는 7월까지 토지 등 소유자 10%의 동의를 받아 예정지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공공재개발은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과는 달리 LH와 SH 등이 땅을 직접 사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이 단독 혹은 조합과 함께 공동시행사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공공 주도 개발 방식이다. △용적률 상향(현행 250%→300%) △분양가 상한제 적용 제외 △사업비 융자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준다. 대신 새로 짓는 주택 중 조합원분을 제외한 물량의 절반은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민설명회를 거쳐 연내 정비계획 수립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공공 주도 개발이 성과를 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LH 사태로 공공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동의율 확보에 난항이 예상된다. 공공주택 복합개발과 공공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주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변수다. 민간 개발이 쉬워지면 굳이 임대주택을 더 지으면서 공공이 개입하는 사업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공개발을 밀어붙인다고 해도 서울시와 엇박자가 나면 큰 동력을 얻기 힘들다”며 “변수가 많아질수록 구성원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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