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와 소통 시작한다는 靑…'전경련'은 건너뛴 이유

입력 2021-04-09 11:02   수정 2021-04-09 11:16


청와대가 경제계와 소통을 시작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7일과 8일 잇따라 경제단체를 방문했다. 앞으로 개별 기업도 찾아갈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 실장의 소통 행보에 소외된 단체도 있다. 바로 전국경제인연합회다.

이 실장이 경제단체를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이 실장에게 "경제 도약을 위해 경제계와 정부가 같은 마음으로 소통해달라"며 "기업인과 활발하게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주문했다.

이 실장은 지난 7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찾았다. 이 실장은 최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상의와 정부가 경제이슈 관련 집중해서 수시로 대화하자", "앞으로 자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면 좋겠고 정부가 도와줄 게 있으면 말해주면 좋겠다" 등의 발언도 했다. 경제계에서는 대한상의를 정부와 경제계의 소통창구로 삼겠다는 뜻이 숨어있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8일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과 만났다. 이 실장은 손 회장을 만나서도 "기업의 고마움을 느낀다"며 "경영계와 정부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실장의 소통 행보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소통이 일회성, 일과성에 그치지 않도록 경제단체 주관 간담회 초청이 있을 경우 적극 참석해 소통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별 기업을 찾아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실장이 전경련을 방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경련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경련은 대한상의, 경총과 회원사가 많이 중복된다"고 답했다. 경제계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한상의, 경총, 중기중앙회 등 다른 단체들도 회원사가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 정부의 '전경련 거부감'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경련은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주도하는 등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 정부에서 '적폐'로 낙인찍힌 상태다. 당시 사태에 연관된 인물은 대부분 전경련을 떠났지만, 정부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현 정부는 전경련의 관계가 회복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올 때마다 강하게 선을 긋기도 했다. 2019년 3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필립 벨리에 국왕 환영만찬에 참석하면서 관계 개선 가능성이 거론되자, 청와대 관계자는 공식 브리핑에서 "전경련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기업과 관계에 있어 대한상의, 경총 등과 관계를 통해 긴밀히 소통을 하고 있다"며 "전경련과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새 시작'을 위해 명칭 변경 등을 하겠다고 정부에 제안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이 마저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경련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기보다 존재감이 없는 형태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게 현 정부의 속내"라고 말했다.

전경련이 '경제단체 맏형'이라는 지위를 회복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이 모두 탈퇴한 상황이고, 연구 인력도 예전만 못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계에서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두 회원사로 두고 있어 중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대한상의나 노사이슈에 특화된 경총이 할 수 없는 전경련 만의 역할이 있다"는 목소리도 많다. 한 경제계 인사는 "전경련이 옛 지위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정부가 일부러 '패싱'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정부여당이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내놓는 상황에서 전경련이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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