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부담 큰 美, 타협 압박…바이든 "미국 車업계의 승리"

입력 2021-04-11 17:43   수정 2021-04-12 01:40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극적으로 배터리 소송에 합의한 배경에는 한·미 양국 정부의 설득과 압박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는 두 회사 최고위급 경영진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극비리에 진행됐다. 두 회사는 이달 초까지도 겉으로는 일절 합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 대처하겠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즉각 “미국 사업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경쟁사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강수를 뒀다.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면서 합의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금지 조치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

SK가 미국에서 사업을 철수하면 공장이 건설 중인 조지아주의 2600개 일자리가 없어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공화당의 텃밭에서 최근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강세지역)’로 변한 조지아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엔 부담이 컸다. 미국 사회는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잣대가 매우 엄격하다. 1916년 ITC 설립 이후 영업비밀 침해사건에 대해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은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11일(현지시간) 거부권 행사 시한을 앞두고 양사에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 USTR(무역대표부)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업계의 승리”라며 “미국이 강력하고 다각화된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 안보실장 협의에서도 배터리 분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주말 화상회의를 열어 배상금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도 지난달 31일 서울 모처에서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은 공식적으로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서 물러난 것과 관련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두 그룹 총수 간 비공식적으로 배터리 소송과 관련한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양측은 “이날 회동에서 배터리 소송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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