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협회 등 농민단체는 불과 1년 전 광우병이 발생했던 국가의 소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국민 건강을 위한 각종 장치가 마련돼있으며 국내 영향은 적다고 설명하고 있다.
8단계에 걸친 허용 절차는 수입허용 가능성 검토, 가축위생설문서 송부, 답변서 검토, 현지조사, 수입허용여부 결정, 수입위생조건안 협의, 수입위생조건 제정 및 고시, 검역증명서 서식 협의 등으로 구성돼있다.
현재 정부의 수입위생조건 행정예고는 약 7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풀이된다. 농식품부는 행정예고 기한이 경과하는대로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수입위생조건안을 국회에 제출해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심의를 통과하면 위생조건이 확정되고 수출작업장을 승인하는 절차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두 나라의 소고기가 국내에 들어오게 된다.
축산업계는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유럽산 소고기에 대한 광우병 위협이 여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국한우협회는 아일랜드와 프랑스 소고기 위생조건 협의가 진행되던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통해 "국민건강을 뒷전으로 여기고 자국산업 피해보호대책 없이 추진되는 광우병 발생국 쇠고기 수입을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유럽 소고기는 지난 2000년부터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돼왔다. 1980년대 중반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광우병이 1990년대 이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서다. 특히 1996년 영국 보건부 장관이 광우병의 인간 감염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광우병 공포가 본격화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10여개 유럽 국가들은 광우병이 잠잠해진 후 '광우병을 통제하고 있다'는 '광우병 통제국' 지위를 갖추고 한국 등 세계 각국에 수입 허용을 요청하고 있다.
축산단체 등은 '광우병 통제국'이라는 아일랜드와 프랑스에서도 최근까지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우협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5월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했다. 그 이전에는 2013년과 2015년에 광우병 발생 기록이 있으며, 2000년 광우병이 유럽을 강타했을 때는 영국에 이어 두번째로 발병률이 높았다. 프랑스는 2011년과 2016년 광우병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이 광우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국가별 다른 기준을 적용했던 것이 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민단체들은 지난해 아일랜드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근거로 수입을 허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2012년 브라질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병했을 때 수입을 중단한 조치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산 소고기 수입 중단은 이례적 조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정형 광우병은 고령의 소에서 드물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광우병이다. 오염된 사료를 통해 전파되는 정형 광우병과 달리 다른 소들이 광범위하게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광우병과 관련해 홍역을 치렀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말 상대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한 브라질을 상대로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는 수입 중단 조치를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정부는 "한국과 검역 체계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브라질은 이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일시적으로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에 제정하는 수입위생조건에는 30개월령 미만 소에서 생산된 소고기에 한 해 수입을 허용하고, 편도?회장원위부 등 특정위험물질과 내장, 분쇄육, 가공품은 수입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돼있다"며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기준과 비교해도 강화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또 "소고기 수입이 허용된 이후 수출국에서 소해면상뇌증(BSE,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수입이 되지 않도록 검역을 중단하고, 상대국가의 식품안전 시스템을 점검해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이후 수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한우협회 등 국내 생산자 단체가 유럽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은 광우병 위협 때문이 아니라 자국산업 보호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산 소고기가 대거 수입된 이후 한우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피해를 입은 생산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10여개 유럽 국가들이 소고기 수입 허용 절차를 밟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유럽 소고기 수입이 국내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연합(UN)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유럽산 소고기의 평균 수출 가격은 kg당 5.04달러로 미국산의 71%, 호주산의 88%에 불과했다. 201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학술지 농촌경제에 게재된 'EU 소고기 수입개방영향 분석' 보고서에서는 2019년 수입규제가 풀릴 경우 10년내로 연간 수입량이 최대 17만2000톤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전체 수입량(약 34만톤)의 절반에 이르는 양이다.
반면 농식품부는 이번 수입 결정이 국내 소고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프랑스에 앞서 덴마크와 네덜란드 소고기가 수입이 허용돼 지난 2019년부터 한국에 들어오고 있지만 지난해 수입량은 약 288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0.07%에 불과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유럽 소고기 수입을 시작하기 전의 분석은 대체로 가격만을 변수로 활용해 영향이 과대 추정된 측면이 있었다"며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실제 한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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