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사기에서 송금책 역할을 맡아 가짜 채무변제 확인서를 써주고 돈을 받았다면 범죄수익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범죄수익법에 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작년 3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다수의 피해자로부터 1000여만원을 받아 차명계좌로 전달하는 송금책 역할을 맡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우리에게 돈을 모두 갚으면 싼 이자로 더 많은 돈을 대출해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속인 뒤 A씨에게 돈을 건네도록 했다.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뒤 가짜 채무변제 확인서를 써줬다.
검찰은 A씨에게 사기방조 혐의와 함께 사문서 위조·위조사문서 행사, 범죄수익법 위반 등의 혐의도 적용했다. 범죄수익법은 사문서 위조·위조사문서 행사 범죄를 '대범죄'로 분류하고 이 범죄로 범죄수익을 챙기면 징역형·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의 경우 A씨의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범죄수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사문서 위조·위조사문서 행사는 범죄수익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이 같은 판단은 다시 뒤집혔다.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문서를 위조한 것이어서 A씨가 범죄수익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채무변제확인서를 행사하고 동시에 돈을 받았기 때문에 이는 범죄수익법상 범죄수익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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