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9일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선출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맥빠지게 진행됐다. 전당대회는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를 계기로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거둘 수 있는 대표적 정치 행사다. 그런데 민주당은 전대를 통해 이런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후보들간 차별화를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이른바 ‘문팬(문재인 팬덤)’에 눈도장을 찍기 경쟁에 치중했다. 친문(친문재인), 비문 후보 가릴 것 없었다. 당 발전을 위한 치열한 논쟁도, 비전 제시 경쟁도 보이지 않는다. 당내 최대 세력인 친문표를 잡기 위한 ‘더 센 발언 경쟁’에 열을 올렸다. 비교적 온건하다고 평가받는 후보들도 이런 흐름에 동승했다.
이들은 내부 쇄신 경쟁보다 ‘외부의 적’을 표적 삼아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데 앞다퉈 나섰다. 이들 공통의 ‘외부 적’은 정권 실세 수사로 여권과 갈등을 빚고 있었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광화문 집회, 전광훈 목사 등이였다. 이 역시 문팬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니 차별화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당내 비문 소속의 모 후보는 기자에게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내가 비문, 비주류지만 당내 경선 당락에 큰 힘을 발휘하는 진문(진짜 친문)을 의식하고 이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며 “그러다 보니 연설 내용도 후보들 간 별 차이 없이 천편일률이 됐고, 전대가 여론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경선 후보들이 친문을 비롯한 강성 당원들 마음 잡기 경쟁에 나선 것은 경선 규칙 때문이었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 규칙엔 당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당원 5%, 일반 국민 10% 비중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토록 하고 있다. 90%가 당원들 표로 할당하다보니 민심을 반영하기 어렵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은 친문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대 결과는 당심과 민심이 괴리되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민주당 대표적인 비주류이면서 ‘문팬’과 각을 세워 온 조응천 의원은 “(전대가)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니 우리들만의 리그가 됐고, 논쟁이 없으니 차별성이 없고 비전 경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며 “이름만 가려놓으면 누구 주장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초록동색’인 주장들만 넘쳐났다”라고 비판했다. 또 “(후보들은) 몇몇 (여권) 주류 성향의 유튜브, 팟캐스트에는 못 나가서 안달이었다”고 했다.
경선 결과는 친문판이었다.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친문이었다. 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소병훈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에서 낙선했다. 이낙연 의원이 대표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한 것도 친문의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의원은 대표 재임 중 친문 강성지지층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해 9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친문팬덤’에 대해 “강성 지지자는 긍정적 기능도 있을 것”이라며 “당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옹호한 게 대표적인 예다. 당 기반이 약한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이 대표로선 당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친문 지지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2018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친문 대세를 확인시켜 줬다. 이해찬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 5명 전원이 친문으로 구성됐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전도 친문에 의해 좌우됐다. 경선판을 좌지우지하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을 친문이 장악하다보니 박영선·우상호 후보는 친문 구애 경쟁에 나섰다. 박 후보는 지난 1월 24일 문재인 대통령 생일 때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썼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달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도 친문판이다. 대표 경선 후보인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의원 모두 대표적인 친문계다. 당 지도부가 연이어 친문이 장악하고 이견을 허용하지 않다보니 당내 민주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는 4·7 재·보궐선거에서 중도층 외면을 받은 한 요인이다. 선거 참패 이후 초선 의원들 중심으로 당 쇄신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강성 친문에 ‘진압’되는 분위기다. 이 정도로 패배하면 예전 같으면 정풍운동이라도 일어났다. 그러나 말로만 쇄신을 외칠뿐 친문 벽을 넘지 못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른바 ‘NATO(No Action Talk Only)’에 그치고 있다. 조국 전 장관 사태와 관련해 당의 대응을 비판한 초선 의원들 중 상당수는 이전엔 조 전 장관을 앞장서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니 친문대세론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이 특정 계파에 의존하는 것은 민주주의에도 역행한다. 계파 패권주의가 만연한다면 능력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을 어렵게 하고,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문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심’과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인데, 특정 ‘팬덤’이 당을 장악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권위주의 시절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당의 지도부와 팬덤이 직접적으로 결합해 당의 밑바닥 여론부터 의사 결정권까지 모두 장악한 정당은 ‘대중 독재’, ‘민중 독재’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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