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텍을 설립한 최영수 회장(사진)은 자전거에 공구를 싣고 다니며 팔던 행상 출신이다. 당시엔 가격을 조금 높게 부른 뒤 적당히 깎아주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품을 정가에 판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조금씩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공구 거래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교회의 주보를 본떠 공구 카탈로그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공구 업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바이블’로 통하는 ‘한국산업공구보감’이 세상에 선보인 순간이다.
체계적이지 못한 공구 유통망이 눈에 들어와 표준화 작업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은 “공구는 비슷해 보여도 규격이 중요하기 때문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정확하게 의사소통하는 게 관건”이라며 “당시 일본 카탈로그가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았고 규격 때문에 반품하는 사례가 잦았다”고 설명했다.
공구보감 보급이 늘어나면서 공구상들은 공구 주문을 받을 때 고객과 공구보감을 보면서 소통했다. 공구보감을 수백 권씩 구매해 거래처에 배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렇게 시작한 28쪽 분량의 팸플릿은 30여년이 흐르면서 3620쪽의 두꺼운 책자로 변모했다. 국내외 1250개사, 14만여 개의 산업공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크레텍은 한국산업공구보감과 주문 시스템을 연계해 온라인 주문부터 재고 확인, 견적서 작성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에서도 공구보감의 분류체계를 인용한다. 크레텍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유통대상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크레텍은 연 매출 50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산업공구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공구 유통망 구축을 위해 2015년 ‘크레텍 서대구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2017년 군포시 당동에 공구업계 최대 규모 물류센터인 ‘서울통합물류센터’를 열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공구는 산업을 움직이는 열쇠”라며 “세월은 변했어도 공구를 통해 세상이 더 편해지고 안전해지는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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