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게 말아 놓은 1만원짜리 지폐가 연분홍 리본으로 장식돼 있다. 초록을 배경으로 지폐를 꾸며 찍은 ‘돈의 초상’ 9개를 이어붙여 놓으니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처럼 산뜻해 보인다. 사진가 윤창수의 사진전 ‘나인(NINE)’의 전시작 가운데 하나인 ‘화폐’란 작품인데, 작가의 의도는 사뭇 묵직하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관념에 매몰돼, 개성과 자유를 잃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풍자한 ‘개념사진’이다. 우리는 개인의 성향을 억누르며 산다. 내 마음대로 꾸미는 교외의 단독주택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몇 배 선호한다. 다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을 찾아 자녀의 등을 떠밀어 보낸다. 또한 누구나 다 이름을 아는 직장에 들어가야만 어깨를 펴고 다닌다. 우리 의식에 경제적 가치와 겉모습을 중시하는 풍조가 깊게 스며들어 있어서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서 돈뿐 아니라 아파트, 휴대폰, 라면 등 이 시대 한국인들이 목매 좇고 있거나 우리의 삶을 획일화하는 사물들을 등장시켜 이런 세태를 비꼬았다. (울산 가기사진갤러리 18일까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