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영장에 수억원 송금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눈물

입력 2021-04-15 12:00   수정 2021-04-15 12:37


2018년 7월 직장인 A씨(34)는 서울 재경지검 수사관을 사칭한 사기범 B씨로부터 “국제 마약 사건에 연루됐으니 내일 검찰로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A씨가 보이스피싱을 의심하자 B씨는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대검찰청 홈페이지를 알려줄테니 영장을 직접 확인하라”고 했다.

B씨가 불러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실제 A씨 명의로 발부된 영장(가짜)이 떴다. 깜짝 놀란 A씨는 수사 협조를 위해 B씨의 지시대로 금융감독원 팀장이라는 C씨의 계좌로 전 재산인 수억원을 보냈다.

자금 출처만 확인한 뒤 곧바로 환급될 것이란 B씨의 말과 달리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A씨는 금감원에 문의를 했고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으나 이미 전액 현금으로 인출된 뒤였다.

금융감독원(원장 윤석헌)이 15일 발표한 '2020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에 따르면 피해건수와 금액은 각각 2만5859건과 235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65.0% 감소했음에도 가족·지인 등을 사칭한 메신저 피싱 피해액은 9.1% 증가했다.

메신저 피싱 사기범들은 대부분
자녀를 사칭해 친구 추가 및 악성 앱 설치를 요구한 뒤 결제 또는 회원인증을 한다며 피해자의 신분증(촬영본),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 신용카드번호 등을 요구, 탈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탈취한 신분증과 개인정보는 피해자 명의의 핸드폰과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는 데 활용돼 은행대출, 카드론 및 약관대출 등을 받아 편취하는 수법이다. 이 같은 사칭형 사기는 50~60대 여성이 가장 취약하다는 게 금감원 측 설명이다. 실제 피해자 가운데 50대 여성과 60대 여성의 비중은 각각 28.4% 및 27.1%로 집계됐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5계명도 소개했다. 주요 내용은 ①경찰?금감원이라며 금전을 요구하면 무조건 거절, ②메신저·문자를 통해 금전을 요구하면 유선 확인 전까지 무조건 거절, ③등급 상향, 저금리 전환, 대출 수수료 명목 금전 요구는 무조건 거절, ④출처 불분명 앱, URL 주소는 무조건 클릭 금지, ⑤사용하지 않은 결제 문자는 업체가 아닌 해당 카드사에 확인 등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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