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3200 찍어도…'매도 의견' 없는 증권사 리포트

입력 2021-04-15 17:59   수정 2021-04-16 02:23

“주식은 매수보다 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증권가의 오랜 격언이다. 지난해 ‘불장’을 지나 올초 코스피지수 박스권을 경험하면서 ‘쥐고 있는 종목을 언제 처분해야 하나’ 고민하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장중 3200을 찍고 내려온 15일 5대 대형 증권사가 내놓은 종목 리포트 18건 중 ‘매도(sell)’를 외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대 대형 증권사(자기자본금 기준) 중 3곳은 1년간 매도 의견을 담은 종목 리포트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았다.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이다. 나머지 두 곳도 매도 의견을 낸 비율이 0.5~1.3%에 그쳤다.

이 기간 ‘매수’ 의견 비율은 증권사별로 74.8~91.6%였다. ‘중립(보유)’ 의견 비율은 7.1~20.1%였다. 각 증권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종목 리포트는 대부분이 무료로 볼 수 있어 개인투자자에게 투자 지침서로 통한다.

매도 리포트가 사실상 전무한 이유에 대해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포트를 쓰기로 한 것부터가 1차적으로 선별을 거친 종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업종별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수많은 종목 중 리포트를 쓸 정도면 통상 유망한 종목으로 꼽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꾸준히 내고 있다. 리포트를 통해 매수 의견을 냈다가 시장이나 기업 상황이 변하면 투자자들에게 ‘탈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봐서다. 지난달 말 기준 1년간 국내 증시에서 메릴린치는 전체 리포트 중 21.4%에 매도 의견을 적었다. 모건스탠리는 매도 의견 비율이 15.2%, 골드만삭스는 13.5%, 노무라는 11.4%로 집계됐다.

국내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관행이 됐다. 매도 리포트를 낸 뒤 기업들이 애널리스트의 탐방을 거부하거나 연락을 피하는 등 리서치 활동에 불이익 받은 사례들도 영향을 미쳤다. 법인 자금 운용이나 인수합병(M&A), 상장 업무 등을 따내야 하는 만큼 리서치센터 입장에서는 기업이나 타 부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도 매도 의견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증권가에서는 ‘중립’, ‘보유’, ‘hold’를 매도 신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 중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매도 의견을 꺼리는 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홍길동처럼 ‘매도를 매도라 부르지 못한다’는 자조적 농담도 한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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