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A와 B가 있다. 두 학생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A학생은 열 시간을 공부해서 90점을 받았다. B학생은 같은 시간을 공부했지만 70점에 그쳤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우등상을 준다면 누구한테 줘야 할까?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라면 우등상은 당연히 성적이 더 좋은 A학생의 차지일 것이다. A학생과 똑같은 시간 동안 공부한 B학생에게도 노력상은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등상은 어림없을 것이다.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에서도 우등상은 노력이 아닌 실력을 평가해 수여한다. 단적으로 전국의 거의 모든 고교생이 응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실력에 대한 평가이지 노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노동계로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얘기다. 이는 투입한 노동량이 같다면 보상도 같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도 노동계에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논리가 금과옥조인 양 얘기된다. 공부량이 같다고 해서 똑같이 보상하지 않는 교육 현장보다 노동계의 사고방식이 더 퇴행적이란 게 놀랍다. 학교 교육이야 교육의 목적상 결과만큼 과정도 중시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지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대체 왜 그런 안이한 이야기가 오간단 말인가?
프로야구에서는 3할 타자와 2할 5푼 타자의 연봉이 같지 않다. 두 선수가 똑같이 동계 훈련을 소화하고 출장한 경기 수도 같고 심지어 타석에 들어선 횟수까지 모두 똑같다고 해도 그렇다. 두 선수가 동일한 노동을 했는지는 몰라도, 팀과 팬들에게 동일한 가치와 효용을 가져다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공부하고 오래 운동했다고 더 큰 보상을 준다면 학생은 시험을 잘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운동선수는 경기에서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오래 머물러 있기만 할 것이다. 거기서 그냥 버티고만 있어도 보상이 저절로 올라갈 테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평등주의적 관념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고약한 속담도 그런 인식에서 나온 건지 모른다. 사촌이 열심히 노력해 재산을 늘렸다면 친척으로서 축하할 일이지 배가 아프다니, 심보 사나운 일 아닌가?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나와 뭔가 다른 걸 인정하지 못하게 된 듯하다. 그런 사고방식이 비판 없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다 보니 이젠 사촌이 명문대에 들어가도 배가 아프고 사촌의 월급이 올라도 배 아픈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반문할 일이다. 똑같이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다고 다 같은 대학에 가는 게 맞는가? 근속 연수나 노동 시간이 같다고 모두 똑같은 임금을 받고 다 같이 승진하는 게 맞는가?
보상의 공평성을 논하기 위해서라면 동일 노동, 동일 임금보다 ‘동일 성과, 동일 임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반면 단순 업종의 경우는 인센티브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다. 많은 사람이 주어진 작업 방식에 따라 비슷한 일을 하므로 성과의 격차가 크게 나는 편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강화한 계약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급여를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이처럼 인센티브의 효과 차이에 따라 인센티브 제도의 활용도 달라져야 한다. 적절하지 못하게 적용한 인센티브 정책은 생산성 향상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동일 성과, 동일 임금 방식 내에서도 인센티브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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