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15 총선에서 180석을 얻어 압승한 여당은 국회의 오랜 관행과 절차를 무시하는 오만을 보였다. 2004년 17대 국회부터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넘긴 관행을 유지한 것은 여당을 견제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당인 민주당도 야당 시절엔 법사위를 그렇게 활용했다. 그랬던 여당이 ‘거여(巨與)’가 되자 안면을 바꿔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했다. 이에 반발한 야당이 다른 상임위원장을 포기해 1985년 이후 처음으로 여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했다.
견제 장치를 제거한 여당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입법 폭주로 치달았다. 야당과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는 대신 논란 많고 부작용이 뻔한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기업규제 3법, 노조 기득권을 더 강화한 노동 관련법, 중립성 보장장치를 없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전세 대란을 초래한 임대차법 등이 ‘개혁 입법’ 미명 아래 여권 단독으로 처리됐다. 법사위는 본연의 견제기능을 상실한 채 여권의 충실한 ‘통과위’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런 여당의 독주가 ‘4·7 재·보궐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 됐다. 선거 이후 여당은 반성하고,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2주도 안 돼 다 까맣게 잊은 듯하다. 윤 원내대표뿐 아니라 대표 경선 후보들 모두 ‘개혁 전초기지’ 운운하며 법사위원장을 내줄 수 없는 것은 물론 18개 상임위 독식 체제도 유지하겠다고 한다. 일방적 국회 운영, 입법 폭주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야당의 견제기능을 무력화하고 특정 정당이 일당 독주하는 것은 민주주의 퇴행을 부를 뿐이다. 국민의힘이 원내대표를 선출한 뒤 원 구성 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여당이 선거 민심과 야당을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법사위원장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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