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의도 국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누가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느냐’다. 법사위는 모든 법률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녀 국회 내 ‘상원’으로 불린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18개 상임위원장 재배분을 포함한 원(院) 구성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마침 21대 국회 첫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로 옮기면서 공석이 됐다.
원래 상임위원장은 정당별 의석수에 따라 여야 협상을 통해 나눠 갖는 게 관례다. 하지만 지난해 전반기 원구성 협상이 법사위원장을 놓고 파행을 거듭하자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무기로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재보선에 패한 민주당이 오만과 독선을 반성한다면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을 돌려줘야 한다”고 압박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야당은 거지가 아니다”라며 “법사위원장이 빠진 상태에서 무슨 (원구성)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은 절대 법사위원장을 내주지 않을 태세다. 윤 원내대표는 물론 당대표 경선에 나선 홍영표·송영길·우원식 의원 등도 한목소리로 ‘법사위원장 사수’를 외치고 있다.
여당 내 차기 법사위원장 후보로는 3선인 이광재·정청래 의원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 의원이 대권 도전을 이유로 난색을 표해 사실상 정 의원으로 좁혀졌다. 야당에선 “강경파·막말 정치인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정 의원은 “내가 법사위원장이 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느냐”며 불쾌감을 보였다.
양당이 법사위원장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건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을 의식해서다. 법사위는 국회에 제출되는 모든 법률안의 체계·자구는 물론 내용까지도 심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국회 법률안 심사는 ‘해당 상임위-법사위-본회의’ 순으로 이뤄진다.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의회구조에서 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임위에서 의결된 모든 법안에 대해 반드시 다른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법사위가 법률안의 체계·자구를 넘어 내용까지 바꾸는 건 ‘월권’”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법사위가 사고 유발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기준을 당초 ‘사업장 매출의 10%’에서 5%로 하향조정해 논란이 됐다.
법사위원장은 정부·여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할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 김대중 정부 시절인 16대 국회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대까지 법사위원장은 대체로 야당이 맡아왔다. 지난해 출범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석권하면서 이런 관례는 깨졌다.
법사위의 강력한 권한을 축소하자는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내세우며 작년 7월 법사위를 ‘윤리사법위’로 바꾸고 체계·자구 심사권을 별도의 전문검토기구로 넘기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선 여당이 법사위를 장악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대두되면서 법사위 권한 축소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며 법사위 권한 축소를 강조했던 민주당이 이제와 개혁추진을 이유로 법사위를 야당에 절대 넘겨줄 수 없다며 몽니를 부리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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