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중국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에 제동을 걸자 중국이 "양국 관계가 더 손상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두 나라는 지난해 호주가 중국에 대한 코로나19 기원 국제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이 와인 등의 수입을 제한하는 등 1년 넘도록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22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은 전날 빅토리아주정부가 외국 정부와 체결한 업무협약(MOU) 4건을 취소했다. 이 중 2건은 빅토리아주정부가 2018년과 2019년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체결한 것이다. 나머지 2건은 시리아 정부와 맺은 과학협력 MOU, 이란 정부와 합의한 교육협력 MOU다.
페인 장관은 "이 MOU들이 호주 외교정책과 모순되고 호주 외교관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했다"고 취소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빅토리아주 인프라 건설 계획에 중국 업체가 참여하거나, 빅토리아주 기업이 중국에서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계속 허용된다.
앞서 대니얼 앤드루스 빅토리아주총리는 중국과 체결한 MOU를 취소하면 이미 껄끄러운 대중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반대한 바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소속된 집권당은 우파 자유당이며, 앤드루스 빅토리아주총리는 야당인 좌파 노동당 소속이다.
호주 연방의회는 지난해 12월 주정부가 외국 정부와 독자적으로 맺은 계약을 거부하는 권한을 연방정부 외무장관에게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외무장관의 이번 조치는 법안 통과 이후 첫 사례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호주의 일대일로 이탈에 대해 "일대일로는 하나의 경제 협력 제의로 개방과 포용의 정신으로 참가국들에 이익을 주고 있다"며 "호주의 이번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또 다른 도발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대사관은 또 "이번 조치는 호주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음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반드시 양자 관계에 더 심한 손상을 초래하며 돌로 자기 발등을 찍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호주가 국내법을 이용해 국제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훙 화둥사범대 호주연구소장은 글로벌타임스에 "호주의 이번 조치는 중국과의 무역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재건한다며 추진 중인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점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호주가 일대일로 사업을 뒤엎은 것은 중국의 민감한 곳을 건드린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선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가 중국에 과도한 빚을 지게 됐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호주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의 대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장비를 5세대(5G) 통신망 구축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중국 기원 국제 조사를 촉구하면서 양국 갈등이 더욱 확대됐다. 호주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된 안보 협의체 '쿼드(Quad)'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부터 소고기, 랍스터, 건초에 이르기까지 수입 제한 조치를 쏟아내고 호주산 와인 등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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