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진짜 나로 사는 것 같아"…K그랜마의 유쾌한 하루

입력 2021-04-22 17:35   수정 2021-04-23 02:03


조순자 씨(71)의 스케줄은 빼곡하게 차 있다. 월요일에는 일본어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는다. 수요일엔 동창회에 나가 합창단과 봉사 활동을 함께한다. 목요일엔 극단에 나가서 연극 공연 준비를 하고 금요일엔 올드 팝송을 듣고 따라 부르는 강의를 듣는다. 화요일과 주말엔 쉬면서 복습과 연기 연습을 한다. 조씨는 “젊은 시절엔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과 가족들을 위해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더욱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웨이트·고전 배우기 등 다양한 도전
K그랜마의 하루는 뜨겁고 유쾌하다.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긴다. 젊은 사람들이 하기 힘든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하고, 도전하기 어려운 일에도 과감히 나선다.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봉사 등을 통해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기여한다.

원혜영 씨(61)는 이틀에 한 번 2시간 정도씩 웨이트 운동을 하며 몸을 열심히 가꾼다. 지난 4월엔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패션모델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원주에서 서울까지 왕복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옷을 좋아하던 특성을 살려 직접 모델이 되기로 결심했다. 원씨는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전히 무언가에 미치고 싶다”며 “운동 실력을 보완해 많은 시니어에게 가르쳐 드리고 모델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는 K그랜마도 있다. 수필가이자 연극 배우인 윤신숙 씨(65)는 최근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며 “고전 아카데미에 가서 고전 수업을 듣고 미술사와 음악 수업도 병행하며 사고와 지식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했다.
인식 변화와 함께 스스로 틀을 깨다
현재 60~70대에 해당하는 K그랜마는 이전 세대의 할머니들과 다른 경향을 보인다. 돈과 시간을 온전히 자식과 손주만을 위해 쓰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문화·소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 1970~1980년대 대학 시절 파격적인 서구 문화를 수용한 경험의 영향이 크다. 당시 남성은 장발을 하고, 여성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고고장과 음악다방을 누비기도 했다. 문화 향유의 기본적인 경험치가 이전 세대에 비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여성들은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로 자신의 꿈과 욕망을 많이 억누르고 살아왔다.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던 열망은 노년이 돼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사회 인식이 빠르게 변하면서 여성도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들은 오랜 시간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살아 왔지만 인식 변화와 함께 스스로 그 틀을 깨고 있다”며 “콘텐츠 속 인물에도 그런 여성상이 많이 투영돼 나오고 있으며, 이를 본 많은 분이 이전과 다른 생각을 갖고 더욱 세련되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K그랜마의 활동은 자아실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학교와 직장에 이은 제3의 공간에서 사회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윤씨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면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더 노력하게 된다”며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많은 사람과 화합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사진=김병언/김영우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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