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종 ADRF 회장 "'개천용' 되고 싶다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야"

입력 2021-04-22 17:56   수정 2021-04-23 00:03

지리산에서 태어난 산골 소년은 가난이 지겨워 2만 리 떨어진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갔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갱도에서 3년을 버틴 청년은 독일에서 뒤늦게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13년의 고학 끝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땄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청년교육·평생교육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권이종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회장(사진)의 인생사 이야기는 영화 같다. 실제로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윤덕수의 모델이기도 한 그는 최근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책 《파독 광부, 꿈을 캐는 교수로》를 펴냈다. 권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천용’을 바라지 못하는 2030세대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싶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내 이야기를 보며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권 회장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한 ‘한독근로자채용협정’으로 독일에 건너간 파독 광부다. 서울에서 공사판 일을 전전하던 그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면 말단 공무원보다 10배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산을 전부 털어 1964년 10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의 ‘막장’ 생활이 끝나갈 무렵 다른 사람들은 귀국하거나 계약을 연장했지만 그는 대학 진학이라는 특이한 길을 택했다.

독일에서 배운 광부 일이 전부였던 그가 어떻게 독일 대학에 갈 수 있었을까. 권 회장은 “독일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어머니와 가족들 덕분”이라고 했다. 광부 생활을 하며 친하게 지낸 독일인 가족들이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대주겠다며 후원을 자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족한 독일어 실력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13년이나 걸린 끝에 그는 마침내 교육학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1979년 한국으로 돌아와 전북대 교수로 부임했다.

권 회장은 “요즘의 2030은 성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보지 못하는 세대”라며 안타까워했다. 물질적으로는 과거보다 더 풍요롭지만 자신처럼 ‘개천의 용’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현 세대들이 더 깨어 있는 만큼 불공정, 불평등에 대해 알지도 못했던 과거 세대와는 직접 비교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자기주도적으로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권 회장은 2006년 한국교원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다양한 청년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경북 문경에 학업 중단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이후엔 ADRF 회장직을 맡아 제3세계 청년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나 자신이 가난하게 살았던 만큼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데 꼭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파독 광부·간호사에게 소홀해진 현 정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권 회장은 “이번 정부 들어서는 파독 광부, 간호사들을 비교적 덜 챙겨주는 듯해 아쉽다”며 “정권을 떠나 한국 경제 발전 역사의 한 부분으로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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