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병원장 A씨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이 같은 통보를 받고 당황했다. 세무당국이 암호화폐까지 찾아내 압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다. A씨는 2017년부터 밀린 세금 약 10억원을 안 내고 버티는 중이었다. 그는 부랴부랴 세금을 납부하면서 “제발 암호화폐는 매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지방세 고액체납자가 숨겨둔 암호화폐를 찾아내 압류하고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세 곳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보유한 고액체납자 1566명(개인 836명·법인대표 730명)을 찾았다고 23일 발표했다. 이 중 즉시 압류 가능한 676명의 암호화폐 약 251억원어치를 압류 조치했다.
압류 대상자의 총 체납금액은 약 284억원이다. 각 1000만원 이상 체납했다. 이병한 서울시 재무국장은 “고액 체납자가 재산을 숨겨두는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치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지방세징수법 36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체납자와 거래 관계가 있는 자(법인)에 대해 재산 소재, 규모 등을 물어볼 수 있는 질문 검사권이 있다. 서울시는 이 법령을 토대로 지난달 26일 4개 암호화폐 거래소에 고액 체납자 암호화폐 보유자 자료를 요청해 세 곳으로부터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시는 압류 대상자에게 암호화폐 압류 사실을 통보하고, 체납 세금 납부를 독려하고 있다. 체납 세금을 전액 납부하면 압류를 즉시 해제할 방침이다.
즉각 효과도 나타났다. 압류 대상 중 118명은 체납 세금 12억6000만원을 자진 납부했다. “돈이 없다”며 지방세 5600만원을 내지 않던 학원강사 B씨는 31억5000만원 상당의 암호화폐가 압류되자 사흘 만에 체납 세금을 모두 냈다.
서울시는 납부 독려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이의 암호화폐는 매각할 계획이다. 아직 압류를 단행하지 않은 890명에 대해선 추가 조사 후 압류 조치를 할 계획이다. 이 국장은 “또 다른 암호화폐거래소 14곳에도 고액 체납자의 암호화폐 보유 자료를 요청했다”고 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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