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물가 등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영세 근로자 및 사업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乙)’ 간 법적 분쟁 증가가 이런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을 지키면 될 일’이라고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불만을 품는 현실을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쟁 급증은 2018년 이후 2년 만에 30% 가까이 급등한 최저임금과 코로나19로 인한 ‘K자형’ 경기침체 등이 취약계층인 영세 사업장과 중소기업에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형 사업장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지만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인력 규모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내복지 등 비급여 혜택을 줄이거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은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다. 생사 위기에 직면한 영세 사업장, 중소기업은 근로시간과 인력 수를 조정하거나 투자비가 들어가는 설비를 자동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경기 안산시에서 12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 제조업체 사장 A씨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장은 인건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최저임금이 이렇게 급격히 오르면 ‘법을 어기든지, 회사가 망하든지’ 하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364만8000명 중 36.3%인 132만4000명은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
국회에도 최저임금제 개선 방안이 포함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하지만 상임위에 계류된 채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추경호·권성동·최승재·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등은 최저임금을 사업 규모별, 업종별, 지역별로 구분해 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균 임금 상승률,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하자는 법안(윤희숙 의원 안)도 발의된 상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권명호 의원 안)도 있다. 윤창현 의원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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