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크게 건강 증진·예방·치료·재활·요양의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나라마다 특별한 전통의학과 소위 보완·대체의학이 건강 증진과 요양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치료·재활은 일부에서 현대의학이라고 부르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과학의 한 분야인 의학의 고유영역이다. 지금의 의학도 각 지역의 전통의학에 기반했지만 점차 과학적인 의학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코로나 백신 개발 때문에 대중에게도 익숙해진 용어가 임상시험이다. 각국이 빠른 시간에 백신을 개발해도 대조군 임상시험을 통해 인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은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쓸 수 있게 시판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획기적인 효과를 가진 백신과 약을 개발해도 대조군을 이용한 소위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되고, 실제 인체에 유효한지 판명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인체에 사용한 이후에도 안전과 효과 확인을 위해 보고된 결과를 문헌 고찰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학적인 결정을 하는 것을 ‘근거중심의학’이라고 부른다. 모든 국가는 이제 근거중심 보건의료정책을 쓰고 있다.
이른바 대조군 연구는 대항해 시대인 18세기에 장기간 해상생활을 하는 선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괴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서 시작했다. 당시 영국 해군 소속 의사인 제임스 린트는 괴혈병 치료를 위해 영국왕립의사회가 권고하는 황산요법과 해군의 권고사항인 식초요법 중 어느 지침을 따를지 결정해야 했다. 치료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린트는 최초의 대조군 임상시험을 고안했다.
린트는 괴혈병 증상이 나타난 12명의 선원을 2명씩 여섯 그룹으로 나눠 다른 조건은 똑같게 한 뒤 시험한 결과 기존의 황산, 식초, 바닷물 등과 비교해 레몬이 괴혈병에 효과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후 18세기, 19세기를 거쳐 조금씩 진행되던 대조군 연구는 1940년대에 비로소 현재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연구 방법으로 발전했다. 대조군 연구 결과를 종합해 분석하는 체계적인 문헌 고찰을 통해 1990년대 이후 현대 의학적 결정의 근간이 되는 근거중심의학으로 발전했다.
21세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18세기 당시 세계 최고 권력자인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도 말년에 각종 질환으로 고생했는데, 최고의 어의들이 황당한 발상인 피를 빼는 사혈요법, 관장요법으로 오히려 고통을 더 키우고 질병을 악화시키는 치료를 했다고 한다. 그때는 아직 가설과 경험에 의한 전통의학이 근거를 갖추지 못하고, 과학으로서의 의학으로 완성되지 않은 시기였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불안으로 국민은 정확한 정보를 궁금해하고 있는데, 미디어는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의학적 근거가 없는 설과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전문가가 방송 등 매체에서 근거 없는 주장과 가설에 기반한 개인적인 경험, 추측, 본인의 정파적 이해에 따른 의견을 여과 없이 언급하고 주장하는 경우를 의학에서는 ‘사기’라고 하고, 이를 통해 상업적인 이익을 취하는 의사를 ‘쇼닥터’라고 한다. 적어도 전문가라면 근거중심의 검증된 의학적 사실을 정확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전문가라면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개인적인 가설과 주장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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