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녹십자의 신용등급을 종전 AA-에서 A+로 낮췄다. 한 단계 차이지만 채권시장에서 ‘AA급’과 ‘A급’ 기업의 대우는 확연히 다르다. 기관투자가들이 ‘A급’ 기업에 대한 투자를 상대적으로 꺼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녹십자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녹십자는 지난해 백신제제 매출이 늘고 종속회사 실적이 개선되면서 1조504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오랜 업력으로 시장 지위가 탄탄한 데다 연매출 100억원 이상 대형 제품을 20여 개 보유한 덕분이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오창 혈액제제 공장을 가동하고 해외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을 확대하면서 영업 수익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녹십자는 2017년까지 매년 10% 안팎의 매출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9년 이후 기업 이미지(CI) 변경에 따른 마케팅 비용 지출과 재고자산 폐기까지 맞물리면서 매출 대비 EBITDA가 6.6%까지 낮아졌다.
신석호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미국 시장에서 면역글로블린(IVIG) 허가 시점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됐다”며 “허가·판매가 이뤄지기 전까진 오창 공장의 고정비 부담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임상·품목 허가를 위한 연구개발비 부담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과거 수준의 영업 수익성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 역시 매출채권 회수기일이 비교적 장기인 중남미 지역에 집중돼 녹십자의 운전자금 부담을 키우고 있다. 커지고 있는 차입 부담도 녹십자의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녹십자는 2016년 이후 대규모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외부 차입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2015년 말 1327억원이던 총 차입금이 지난해 말에는 5664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북미사업부 매각 대금이 들어오긴 했지만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크게 내지는 못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신용도 개선을 위해선 현금창출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 중국에서 진행하는 제품 판매 승인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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