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쏘아올린 공…총수 지정제 개선·유니콘 상장 지원 움직임

입력 2021-04-29 16:23   수정 2021-05-13 00:04


10년 만에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자리 잡은 전자상거래(e커머스) 기업 쿠팡이 업계 밖에서도 논란과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쿠팡은 '총수(동일인) 없는 유통공룡'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식 규제인 동일인 지정제 폐지론에 다시 한번 불을 붙였다. 또한 차등의결권을 비롯해 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유니콘을 둘러싼 제도적 논의에 속도를 내게 했다.
김범석 의장 총수 지정 면해…공정위, 동일인 제도개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핵심 업무 중 하나인 동일인 지정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인인 김범석 쿠팡 창업자(이사회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는 공정위의 올해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 집단) 지정과 관련해 '뜨거운 감자'였다.

공정위는 29일 쿠팡 동일인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니라 법인 '쿠팡'을 지정하며 이같이 밝혔다.

공정위는 그동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고, 외국계 기업집단은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한다는 점을 법인을 총수로 세운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현행 제도가 국내기업을 전제로 설계돼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 어려운 만큼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외국인에게 국내법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는지에 관한 실효성 문제인데 만만치 않다"며 "아마존코리아나 페이스북코리아 자산이 5조원이 넘었다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 형사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인지 등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의장과 쿠팡 어느쪽으로 지정해도 규제 대상 계열사 범위에 같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현재 동일인의 정의, 요건 등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김범석 의장의 총수 지정 문제는 제도 실효성에 대해 찬반 논쟁을 불렀다.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에 대한 규제 개념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들어간 30여 년 전과 경제 상황이 달라졌고, 4차 산업혁명으로 몸집을 키운 신흥 정보기술(IT) 기업은 과거 잣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동일인의 정의, 요건 등을 연구용역을 통해 명확히 하기로 했다.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도 한다. 대기업집단에 대한 효과적 규제 집행 방안과 동일인 관련자 범위의 현실 적합성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오너일가 중심의 대기업집단 개념을 바탕으로 동일인 지정 규제가 만들어졌다"며 "이는 최근 신생 IT 대기업집단과는 맞지 않는 만큼 특수성을 고려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사회상 변화를 반영해 기업집단 정책이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핵심기업과 계열사 간 관계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선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해묵은 규제인 총수 지정 제도의 폐지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김 부위원장은 "시장의 지배를 방지하고,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시대의 정신이고 정책 목표"라며 "동일인 지정제도는 지금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 경제가 더 개방화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로 인해 우리의 경제력 집중이 완화될지, 소유지배구조가 개선될지 또는 사익편취 및 일감 몰아주기가 사라질지를 보면 (실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등의결권 도입 논의·유니콘 상장 꽃길…나비효과

쿠팡은 앞서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으로 경영권 방어장치인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성과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의 상장 지원 논의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유니콘의 원활한 상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서울 사옥에서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열고 국내 유니콘 상장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증시 데뷔 후광효과와 함께 컬리, 두나무, 더블다운인터액티브 등 유니콘이 나스닥 상장 준비에 나선 만큼 국내 자본시장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결과다.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쿠팡의 사례를 들고 "우리 자본시장이 국내 유니콘 기업에 불리한 점은 없는지, 기업공개(IPO) 절차나 제도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원점에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국내 증시보다 한층 높은 상장유지 비용, 보고·공시 부담에도 불구하고 유니콘의 뉴욕증시행이 우려되면서 규제 변화에 속도가 나는 분위기다.

손 이사장은 국내 유니콘의 원활한 상장을 위해 창업자와 2대, 3대 주주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이 적극 활용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차등의결권이 도입되기 전에도 이를 통해 창업자가 경영권을 관리하는데 일부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쿠팡의 김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적용, 실제 지분율은 10.2%에 그치지만 미국 쿠팡Inc 이사회에서 76.7%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이같은 차등의결권에 대해 손 의장은 "현재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조만간 바람직한 합의가 도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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