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비트코인과 '코요테 순간'

입력 2021-04-29 16:45   수정 2021-04-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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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중에 ‘로드러너’가 있다. 로드러너라는 새는 도로에서 매우 빠르게 뛰어다닌다. 같이 등장하는 코요테는 로드러너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절벽에서 도로가 끊어졌는데도 로드러너는 마치 도로가 이어진 것처럼 도망가고(새라서 가능한 듯), 코요테는 이를 계속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허공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부분이다. 코요테가 자신이 허공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한참을 쫓아가지만 자신이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속절없이 추락하고 만다.

이런 장면은 금융불안이나 자산가격 거품이 생성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금융불안이 증폭되고 거품이 부풀어 오를 때는 온갖 낙관적인 이야기들이 이를 정당화한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분명 문제가 심각한데도 혹자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로 과거의 잣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상황을 낙관한다. 하지만 코요테가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하듯 이런 주장들이 근거를 잃는 순간 금융불안은 위기를 초래하고 거품은 붕괴해 자산가격이 폭락한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때를 ‘코요테 순간’이라고 했다.

최근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더 열광하는 모습이다. 통상적인 재정 거래로 없어져야 할 김치 프리미엄이 20%까지 오르기도 했다. 부동산으로 거부가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소위 ‘벼락거지’들도 비트코인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특히 거래량의 60% 이상을 2030세대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왕성하게 경제생산을 준비하거나 기여할 연령대다. 현실에서 좌절한 2030세대가 비트코인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여러 가지 포장된 이야기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테슬라 구입에 허용할 것이라고 한 말은 비트코인의 인기를 급등시키는 데 한몫했다. 비트코인을 제도권으로 진입시키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뤄져 왔다. 페이팔이 결제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사용하기로 했으며 기관투자가들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가 승인됐으며, 미국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지하경제 범죄자들만 사용할 것만 같던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됨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가치가 더욱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탄생한 배경에는 중앙은행과 기존 화폐에 대한 불신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통해 천문학적 규모로 달러를 공급하자 달러 가치가 하락해 달러 보유자의 부가 강탈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에 따라 절대 가치가 하락하지 않을 통화를 만들고자 비트코인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화폐로 인정받아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화폐로 인정받기 위해선 널리 많은 사람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비트코인을 주고 물건을 살 때 물건 주인이 서슴없이 이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상품화폐다. 대표적으로 금은 실제 가치를 가지는 상품이면서 화폐로 사용하기도 편리했다. 국가나 신용이 높은 은행이 보증한 화폐도 통용됐다. 최근에는 국가가 화폐 통용을 강제하기도 한다.

비트코인은 내재가치가 없으며, 그 가치를 보증하는 신용보증자도 없다. 국가가 이를 화폐로 강제할 리도 없다. 혹자는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지만 근거는 약하다. 금은 장신구와 같은 쓰임새가 있지만 디지털 금은 공허한 비유일 뿐이다. 오직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가격이 매겨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어떤 가격도 정당화된다. 하지만 비트코인에도 코요테 순간이 닥칠 수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코요테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이 폭락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는 항상 비관적이어서 돈을 못 번다고 비난해도 좋다. 단, 이처럼 위험한 대상에 젊은 세대가 너무 무리하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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