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공시된 삼성 계열사 지분 변동 내용은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들의 재산권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동시에 충족하는 최대공약수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 지분 10%를 상속받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요 주주 중 하나인 삼성물산(삼성전자 지분율 5.01%) 지분은 17% 이상 확보하고 있었지만,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율 8.51%) 지분은 0.06%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상속으로 삼성전자 장악을 위해 필요한 두 개의 ‘파이프라인’을 모두 거머쥐게 됐다.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통해 이 부회장이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13.52%로 늘었다. 여기에 이 부회장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1.63%까지 합하면 15%가 넘는 지분을 움직일 수 있다.
삼성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 회장을 비롯해 삼성가(家) 사람들의 삼성전자 지분은 5%가량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효율적으로 지킬 수 있던 방법이 삼성생명이었던 셈이다.
삼성생명만 놓고 보면 3남매의 분배 비율이 10 대 7 대 3이다. 두 여동생 지분을 합하면 이 부회장 지분과 같다. 경제계에서는 이 같은 분배 비율을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맏아들인 이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도 지속적으로 경영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당초 경제계에선 유족들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분도 이 부회장에게 몰아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유족들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SDS 지분까지 철저하게 법정 상속비율대로 나눴다. 홍 전 관장이 9분의 3을 가져가고 나머지 자녀들이 9분의 2씩 가져가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를 법정 상속비율대로 나눈 것은 상속세 부담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과 홍 전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이 회장 유족은 상속세 재원 마련 방안을 고심 중이다. 그룹의 ‘캐시카우’인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 배당금을 받아야 금전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3년간 연간 배당 규모를 기존 9조6000억원에서 9조8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유족들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지분 분배 비율을 확정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유산을 둘러싼 다른 재벌들의 가족 간 다툼에 대해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점을 감안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재산 상속 과정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삼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 전 관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지 않았다. 법정 상속비율대로라면 삼성생명 지분 10%를 받아야 하지만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단 한 주도 받지 않았다. 또 다른 경제계 관계자는 “이미 다른 자녀들의 법정 상속비율은 지켜졌다”며 “홍 전 관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 몰아준 것에 대해 특별한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신영/송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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