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으로 떠들썩했을 때 동유럽 국가 루마니아에도 희소식이 전해졌다. 루마니아의 첫 유니콘 기업인 유아이패스(UIPATH)가 루마니아 기업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기 때문이다. 독재 공산주의 국가인 루마니아가 민주화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지 30여 년 만에 이룬 쾌거라는 평가가 나왔다.
로봇자동화프로세스(RPA) 솔루션 기업인 유아이패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대니얼 다인스는 ‘로봇의 보스’로 불린다.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업무를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더 신나는 일을 하자’란 생각을 직접 실현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유아이패스를 기업공개(IPO)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인스는 자산 83억달러의 ‘로봇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유아이패스는 공모가가 희망 범위(52∼54달러)를 넘어선 56달러를 기록해 이번 상장으로 13억4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다인스는 바로 프로그래밍 책을 구해 코딩 세계에 입문했다. 컴퓨터가 없어 친구 컴퓨터를 빌려 썼다. 친구가 잠들면 컴퓨터를 쓰는 식이었다. 독학으로 코딩을 익힌 뒤 2001년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약 5년간 MS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이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다인스는 “20대 유럽 청년이 미국 문화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회사를 차리겠다고 MS를 박차고 나왔으니 스스로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2005년 그는 부쿠레슈티로 돌아가 한 아파트에서 기술 아웃소싱 회사인 데스크오버를 차렸다. 그러나 사업 방향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10년간 부침이 이어졌다. 기술개발을 의뢰한 한 대형 고객사를 잃은 뒤에는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에 집중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인도 고객으로부터 데이터 입력 같은 단순업무를 모방하는 소프트웨어 툴을 소개받으면서 다인스의 사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다인스는 곧바로 인도로 직원을 파견했다. 거기서 RPA의 원조 기업인 블루프리즘을 알게 됐다. RPA는 데이터 분류와 수정, 이메일 발송 같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업무를 로봇이 처리하는 솔루션이다.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는 로봇이 사람 대신 업무를 하다 보니 비용을 줄이고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듬해 또 다른 VC인 엑셀로부터 3000만달러를 수혈받는 등 유아이패스를 찾는 투자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투자액이 몰리자 2018년 유아이패스에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던 손정희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1억달러만 투자할 것 아니면 안 받겠다”고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빌 게이츠는 1가정 1컴퓨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는 이제 1인 1로봇 시대를 꿈꾼다”는 다인스의 말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2018년 루마니아 경제 매체 비즈니스리뷰는 유아이패스의 성장세에 대해 “지난 몇 년 사이 성장한 속도를 보면 누구든 멀미가 날 정도”라고 평가했다. 포브스는 “다인스가 RPA를 창시하진 않았지만 능숙하게 그 세계를 지배했다”고 추켜세웠다. 유아이패스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2020년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 500곳에도 뽑혔다. AR 콘텐츠 기업 나이언틱의 뒤를 이은 2위였다.
RPA 업종은 고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RPA 시장이 향후 약 10년간 연평균 32.8%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아이패스는 RPA업계 1위로 성장했지만 이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올해 초 API 통합 플랫폼 기업 클라우드엘레멘트를 인수하면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인스는 “어떤 회사도 우리가 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6개월 뒤나 그 이후의 유아이패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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