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카리스마, 정치판서도 통할 것"…윤석열, '제3지대 잔혹사'는 뚫어야

입력 2021-05-02 17:49   수정 2021-05-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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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검찰총장이 되기 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너편의 한 호프집을 자주 찾았다. 대개 오후 9시께 서너 명으로 시작하던 ‘2차 집’이었다. 한 명 두 명씩 늘어난 술자리는 파할 무렵인 밤 12시께는 열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법조인은 “왁자지껄한데도 윤석열은 시종일관 분위기를 주도했다”며 “선배들보다 후배들과 가깝게 지내며 조직을 이끌던 그의 일면”이라고 전했다.
권력 눈치 보지 않는 배짱
윤 전 총장은 사법시험 9수 끝에 검찰에 첫발을 들였다. 검찰 재직 시절에는 좌천 등으로 승진이 더뎠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기수를 다섯 단계나 건너뛰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깜짝’ 발탁하기 전까지 그가 검찰 고위직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법조인은 많지 않았다. 윤 전 총장 역시 승진과 자리보전을 위해 선배를 찾거나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윤 전 총장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배짱과 카리스마를 종종 보여줬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국정감사장에선 “위법한 지시는 따르면 안 되는 것”이라며 당시 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항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전 총장은 당시 지인들에게 “평생 쌓아온 인맥 중 반 이상이 등을 돌린 것 같다”《구수한 윤석열》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앞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부하가 아니다”고 따졌다.

윤 전 총장이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이유도 이 같은 강직함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현직 특수통 검사는 “검사도 권력 앞에선 눈치를 보게 마련인데, 윤 전 총장은 달랐다”며 “야생의 DNA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해 “대통령을 구하는 수사”라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다고 한다. 대통령 주변 비리를 방치하면 결국 대통령과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논리다.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윤 전 총장은 대화 중간중간에 ‘그건 옳지 않습니다’란 말을 자주 했다”며 “‘정의’를 판단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뼛속까지 검찰주의자”
윤 전 총장이 조 전 장관을 반대한 건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얘기도 많다. 조 전 장관이 강행하려 했던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한 수사였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조국은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윤 전 총장이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며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면서 김조원 전 민정수석 등이 조 전 장관을 밀었다”고 전했다. 그때부터 청와대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이 정치를 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에게 직접 수사를 받아본 피고인들의 반응은 격하기 그지없다.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사에 혀를 내둘렀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중앙수사부 수사실에서 변호인과 함께 조사를 받겠다고 했더니 변호인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쏘아붙였다”며 “대형 로펌 변호사인데도 입회를 주저할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검찰은 오직 ‘유죄냐, 무죄냐’ 이분법적 흑백 논리에 익숙하다”며 “이해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글로벌 경제, 민생 현안을 제대로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인 윤석열’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친화력과 언변을 강점으로 꼽는다. 윤 전 총장을 보좌한 한 측근은 “국감 며칠 전부터 자료와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보통의 총장들과 달랐다”며 “지난해 국감에서도 원고에 없는 답변을 해 뒤에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 적이 있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대통령 측근, 정치인 등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 경험이 많아서인지 전략적 사고와 대언론 관계가 능숙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 야당 중진의원은 “고건, 반기문 등 과거 중도 포기한 대권주자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강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언변을 꼽을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사람만 챙긴다” 비판
검찰 내부에선 “너무 자기 사람만 챙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총장 재직 시절엔 특수부 출신만 중용한 편중 인사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선 본인과 돈독한 관계인 윤대진 전 검찰국장을 감싸려다 위증 논란도 일었다.

윤 전 총장의 인맥이 서울대 법대와 검찰 출신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많다. 취재에 응한 경제계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윤 전 총장과 교류하는 경제계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확장성을 고려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외교·안보 이력이 없는 것은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측근들은 이런 비판에 적극적으로 반론을 편다. 한 특수통 검사는 “대기업 수사 경험이 많아 경제, 기업의 생리에 밝다”며 “토론회를 하게 되면 윤석열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경제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검찰총장 취임사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본질’ 등을 유독 강조했다. 당시 대검 참모진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왔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선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 책’에 대해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답했다. 1979년 발간된 이 책은 ‘케인스식 규제 자본주의’의 허상을 파헤쳐 ‘우파 경제학자들의 바이블’로 통한다. 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자유 시장경제를 되살린다는 윤 전 총장의 메시지에 기대를 거는 기업인이 많다”고 전했다.

좌동욱/오형주/안효주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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