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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사장의 이날 발언은 ‘의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앞으로 자사 D램의 선폭을 정확하게 공개하고 기술 경쟁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선폭은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척도로 꼽힌다. 좁을수록 작고 전력 효율성이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서다.
최근 5~6년간 업계 관행은 구체적인 선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2016년 D램 공정이 10㎚대에 진입하면서 D램 업체끼리 ‘㎚ 단위의 기술경쟁 및 마케팅을 자제하자’는 암묵적인 신사협정을 맺었다. 공정 난도가 높은 D램은 선폭 1㎚를 좁히는 데도 2~3년이 걸린다. 기술 마케팅의 실익이 크지 않은 것이다.
D램 업체들은 이런 이유로 최근 5~6년간 선폭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2016년 10㎚대 D램 중 가장 먼저 나온 제품을 ‘1x’(1세대 10㎚), 2018년 등장한 2세대 제품은 ‘1y’, 3세대는 ‘1z’로 표현했다. 올초에는 4세대를 뜻하는 ‘1a’까지 등장했다.
시장에선 1x는 10㎚대 후반, 1z는 10㎚대 중반 정도로 추정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1z D램과 SK하이닉스 1z D램의 스펙 차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선폭 공개를 결정한 진짜 이유로 치열해지고 있는 D램 산업의 기술 경쟁을 꼽는다. 7㎚ 이하 파운드리 공정에 주로 활용된 EUV(극자외선) 장비가 D램 공정에 들어오면서 업체들의 자존심을 건 미세공정 경쟁이 진행 중이다. 대만 난야 같은 5위권 D램 업체들도 10㎚대 초반의 미세공정 진입을 추진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2016년 초 1세대 10㎚(1x) D램 양산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등 기술경쟁에서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 등 경쟁 업체보다 6개월~1년 정도 앞섰다. 2019년 1z D램 개발까지도 이 같은 기조에는 변화가 없었다. 굳이 선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D램 기술력은 삼성전자가 최고’라는 얘기가 통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4세대 10㎚(1a) D램부터다. 3위 업체 마이크론이 지난 1월 “1a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양산했다”고 전격 선언했다. 업계와 학계 등에선 “세계 1위 삼성전자가 마이크론에 한 방 맞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이크론의 1a D램을 ‘진짜 4세대 제품’이라고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기술 뻥튀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마이크론은 개발·양산 소식을 발표했지만 제품 사진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같은 세대로 불리는 D램이라도 주요 3사의 제품 간에는 분명한 기술 격차가 있다”며 “기술력이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는 삼성전자가 ‘숫자’를 공개한 건 더 이상 같은 취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D램 경쟁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삼성전자의 전략 수정으로 자의 반 타의 반 D램업계의 ‘기술 마케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돼서다. 한 D램 업체 관계자는 “내부에선 ‘삼성이 갑자기 왜’란 반응이 나온다”며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황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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