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이 쓰인 18세기 중반은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초기이기도 했지만 강대국 간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지속되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영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독립전쟁이 1775년에 시작됐는데,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이 국부론 초판이 출간된 해다. 이런 배경에서 애덤 스미스는 비록 왕정이지만 입헌군주제 국가의 철학자로서, 국가가 지출하는 엄청난 전쟁 비용 등 필요 경비를 어떻게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합리적인가 고민한 것이다.
두 세기 반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애덤 스미스까지 소환한 것은, 대한민국에 조세 원칙이 있는가, 있으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에는 세금 수입이 반드시 필요한데, 세금을 즐겁게 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해 과세할 때는 누구나 타당하다고 느낄 원칙에 맞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다. 애덤 스미스의 조세 원칙이 오랜 세월을 버텨낸 것은 그만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세금을 살펴보자. 집값이나 전월세 부담 증가에 대한 불만이 훨씬 크게 표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의 실패보다 잠재적으로 더 큰 위험은 조세 원칙이 붕괴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종합부동산세는 세율이 올라가고,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적용되는 세율 격차도 커진다. 예컨대 과세표준 3억원인 집 한 채가 있으면 세율이 0.6%지만, 1억원인 집 세 채가 있어 3억원이 되면 세율은 1.2%다. 작년까지는 각각 0.5%, 0.6%였다. 현금화되지 않은 집값이 지불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는지도 걸리는 부분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유 주택 수에 따라 같은 집값에 세율이 두 배 차이가 나는 것은 비례성을 완전히 깨는 것이다. 게다가 과세표준의 바탕이 되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한다면서 급격히 올리는 바람에 지불 능력에 변화가 없어도 세금을 더 내게 생겼다. 여기서도 비례성이 깨지는 것이다.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그전부터도 비례성을 논하기 민망한 상태였는데 더욱 심해졌다. 역시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세율 차등을 강화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비례성 파괴와 비슷한 문제가 투명성에서도 발생했다. 세금이 어떻게 부과되는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납세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투명성의 조건이다. 부동산 관련 세무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가 늘어난다는 농담 같은 소문이 돌고, 제도를 잘못 설명했다가 낭패를 볼 것이 겁난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하소연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 현실화한다는 공시가격은 어떻게 산출되는 것인지 아리송하니 당최 무슨 근거로 세금을 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납세는 헌법상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이렇게 원칙 없이 세금에 손을 대더니 또 바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안 바꾼대도 걱정이지만 바꾼다는 것도 마뜩잖다. 왜 이런 일을 벌여서 이 사달을 일으키나. 이런 상황이니 납세자에게 편리한 시기와 방법으로 과세할 것이란 원칙은 너무나 사치스럽고 한가하게 느껴진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 이 복잡한 제도를 운영하는 데 행정 비용이 상대적으로 과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사실 애초에 왜 이런 세제 개편이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다. 집으로 돈을 버는 것이 죄이고, 더구나 몇 채씩 가지고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세금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걷는 것이어야 하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휘두르는 징벌의 칼이 아니다.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켜줘야 하는 것처럼 그 비용을 대는 납세자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 출발점은 조세 원칙의 준수일 것이다. 위정자들이 이 정도는 이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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