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감각의 무지'가 시간을 낳았다

입력 2021-05-06 17:32   수정 2021-05-07 02:41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데 왜 땅은 밑으로 꺼지지 않을까. 고대 인도 사람들은 거북이 등 위에 있는 코끼리 네 마리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문명들도 기둥이나 또 다른 땅 같은 것이 세상을 받치고 있다고 봤다. 이런 생각을 바꾼 최초의 인물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다. 그는 우리가 사는 땅이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돌’이라는 사실을 갈파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는 수천년간 수없는 논증과 실험을 거쳐 오늘날 확고한 진실로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카를로 로벨리가 교양서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에서 소개하는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도 아낙시만드로스의 아이디어만큼이나 혁신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의 법칙을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유력한 이론 중 하나다.

저자는 “시간은 사실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어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나 원자들이 떨리면 우리는 그 물질에서 열을 느낄 수 있다. 물에 에너지를 가하면 물 분자가 떨리면서 끓어오르는 것도 같은 원리다. 하지만 이를 분자 차원에서만 보면 그저 떨리기만 할 뿐 분자 자체가 뜨거워지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시간도 이 세상의 세부 요소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지의 효과’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원자 규모로 파악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각의 한계 때문에 평균값과 결과 정도밖에는 인지할 수 없고, 여기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파생한 것이다. 물체가 낙하하기 때문에 우주에 위아래가 없는데도 아래라는 개념이 생겨났듯,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아래가 ‘물건이 떨어지는 방향’이듯 시간은 ‘열이 식는 방향’이다.”

저자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이름은 들어봤지만 이해가 어려운 현대 과학이론들에 대해서도 비전공자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다.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통찰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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