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1위인 오비맥주가 GS25 편의점의 자체상표(PB) 수제맥주 제조를 맡는다. 주류업계 1위 회사가 타사 PB 상품 제조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유통시장이 격변을 맞으면서 기존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협업모델이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PB 상품 참여에 소극적이던 라면·빙과업체들도 속속 편의점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근거리 구매 선호 흐름이 강화되면서 편의점이 유통시장의 기존 틀을 흔들고 있다.
롯데칠성음료가 위탁생산을 맡은 CU의 곰표 밀맥주가 자극제가 됐다는 관측이다. 기존 제조사인 세븐브로이의 생산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CU는 지난달 롯데칠성음료에 대규모 생산을 맡겼다. 공급 부족이 해소되자 곰표 밀맥주는 이달 들어 단숨에 편의점 내 맥주 전체 판매 1위로 올라섰다.
공교롭게도 GS25 맥주에 들어갈 노르디스크의 로고도 ‘곰’이다. 업계에선 오비맥주와 롯데칠성음료가 GS25와 CU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기존 맥주 회사들은 편의점 PB 상품인 곰표 밀맥주의 판매 1위 등극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비, 롯데 같은 기업은 원래 자사 상품에 간섭효과가 발생하는 PB 맥주는 제조하지 않아왔다”며 “편의점이 전통 주류회사들을 움직이는 것은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통상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라면의 마진은 30% 선. 하지만 CU는 이를 10%로 줄이면서 가격을 낮췄다. 이 과정에서 CU뿐 아니라 삼양식품도 이익을 일정 부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양이 불닭볶음면 이후 히트상품을 고민하다가 편의점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편의점에서 개당 350원까지 내려간 아이스크림도 빙과 업체와 편의점 간 협력의 결과다. 빙과 업체들은 최근 소비자들이 선호하면서도 구매 후 녹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근거리 쇼핑’ 채널인 편의점을 점 찍어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선 코로나19 이후 기존 ‘갑을 관계’까지 뒤흔드는 편의점의 약진을 주목하고 있다. 외부 활동이 줄면서 마트보다 가까운 편의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데다 1~2인 가구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떠오르면서 핵심 오프라인 채널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에도 지난 한 해 CU·GS25·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빅3’ 점포 수는 2301개 증가해 2019년(1980개)보다 더 많이 늘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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