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러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에 다녀오자마자 또 출국정지를 당했다. 카젬 사장은 검찰과 법무부의 출국정지 조치로 발이 묶여있다가 지난 3월 법원의 판결로 출국이 가능해지면서 지난달 출장 뒤 자발적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무부는 다시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한국GM은 물론 미국 본사까지 강한 유감을 드러내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카젬 사장은 2019년 11월 처음 출국정지 처분을 받았다. 협력업체에서 근로자를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다. 검찰은 지난해 7월 그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이를 전후로 출국정지 기간을 계속 연장했다.
카젬 사장은 거듭된 출국정지 연장에 지난해 7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3월 16일 "출국정지 연장 처분으로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효력을 정지했다.
그는 이어 본안 소송에서도 이겼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3일 카젬 사장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한국GM은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에 따라 올 2월부터 인천 부평2공장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지난달 19~23일엔 부평1공장과 부평2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생산을 재개했지만, 가동률은 50%로 낮춘 상황이다.
부평1공장은 트레일블레이저를, 부평2공장은 트랙스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들 차량은 미국 10대들의 엔트리카(생애 첫차)로 떠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분기 미국에서 팔린 소형 SUV 세 대 중 한 대는 한국GM이 생산·수출한 차량이다. 트레일블레이저가 2만5024대 팔려 소형 SUV 판매 2위를 기록했다. 오랜 기간 한국GM의 수출 효자 모델이었던 쉐보레 트랙스(1만6955대)는 6위였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수요가 뜨거울 때 충분한 물량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해야 하는데, 차량용 반도체 공급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카젬 사장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카젬 사장이 당장은 출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법원은 지난 3월 출국정지 연장 처분 집행정지를 인용하면서 "본안 사건 판결 선고 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그 (출국정지 연장 처분)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본안 판결이 지난달 23일 이뤄진 만큼 이달 23일까지 입출국이 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얘기다.
업계는 물론 법조계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과 법무부가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남은 2주일 내 도주하라는 얘기냐"며 "외국인 등의 도주를 막기 위한 출국정지 조치를 본인들 편의를 위해 멋대로 남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15일. 수사만 2년 넘게 걸린 한국GM 불법파견 사건의 형사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카젬 사장은 이날 첫 정식 재판에 출석했다. 검찰 측은 앞서 "카젬 사장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출국정지했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이날은 물론 앞서 수차례에 걸친 검찰 수사와 1심 재판 과정에서 꾸준하게 출석했다.
카젬 사장은 재판 4일 전인 3월 11일엔 경남 창원공장에서 열린 차세대 글로벌 신차 생산에 필요한 도장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는 2019년 5월 이 공장 기공식 때 한국 철수설에 대해 "(GM이) 한국에서 오래 머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한국의 기형적 사법 시스템이 외국인 투자기업을 떠나는 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김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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