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12년 초 옥스퍼드대에 부임했을 때 옥스퍼드대의 LiB 연구는 맥이 끊긴 상태였다. 구드너프 교수가 1986년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붐이 일면서, 옥스퍼드대 차원에서 관련 전문가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리튬에어배터리 전문가인 피터 브루스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를 초빙했다. 그 후 미래 에너지 저장 분야의 국가적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영국 정부와 브루스 교수 중심의 학계, 산업체가 참여해 전기화학 기반의 에너지저장 연구, 제조기술 개발, 시장 창출 및 조기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독립 연구기관인 패러데이연구소를 2017년 9월 설립했다.
영국에는 세계 10대 명문대학 중 세 개가 있다. 유럽에서 다섯 번째 자동차 생산국인데, 생산량의 81%(약 74조원, 2019년)를 수출한다. 세계 항공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7%(2018년)나 된다. 2500만 대의 디젤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면 연 1억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데,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만든 자동차, 항공산업에 영국이 만든 배터리를 써야 하고, 패러데이연구소가 영국의 배터리 혁신 산실이 돼야 한다고 2019년 보리스 존슨 총리도 강조했다.
총 5000억원 규모로 직접 연구에 1700억원, 첨단시설에 1900억원을 투자하는데, 현재 21개 대학과 50개 산업체, 450명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2018년에 장수명 LiB 배터리, 멀티스케일링 모델링, 전고체 배터리, 배터리 재활용 및 재사용 연구, 2019년 전극제조기술, 양극재료기술, 배터리 분석기술, 차세대 배터리인 소디움(나트륨)이온 및 리튬황배터리 연구, 2020년 마이크로 그리드용 배터리 연구, 2021년에 배터리 안정성 및 성능 향상 연구를 기술 성숙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엔 삼성, LG 같은 소재·부품 중심 제조업체가 전무한 게 문제다. 가장 창의적인 다이슨마저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긴다고 2019년 발표했다. 다이슨은 전기차 제조 계획도 발표했으나, 2019년에 경쟁력이 없다며 계획 자체를 폐기해 600여 명의 연구인력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행히 자체적으로 쓸 전고체 전지는 미래 연구로 유지하고 있는데,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인해 또 9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다이슨은 향후 5년간 신기술 기반 제품 개발(에너지 저장, 소프트웨어, 머신러닝, 로보틱스 분야)에 4조30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투자는 싱가포르, 영국 그리고 필리핀에 집중될 예정이다.
다이슨이 추구하는 전고체 전지기술 상용화는 과학적인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싱가포르에 첨단제조시설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어 영국에서 양산할 기회는 없는 듯하다. 특히 패러데이연구소의 목표인 영국 내 생산과는 배치돼 다이슨이 아니라 다른 업체가 제조 파트너로 등장해야 할 것 같다. 잉글랜드 최북단에 있는 브리티시볼트 같은 신생 기업이 경쟁력 있는 대형 배터리 제조업체가 될 수 있을까? 영국의 최근 연구 동향을 한국의 산·학·연도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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