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정지가 정당한지는) 법원의 결정에 달린 일입니다.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12일 열린 ‘제18회 자동차의 날’ 기념 행사.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사진)은 행사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말 다시 출국정지를 당한 데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카젬 사장은 이날 공식 발언할 기회는 없었지만, 자동차 산업 발전을 이끈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카젬 사장은 2019년 11월부터 검찰과 법무부의 출국정지 조치로 발이 묶였다가 지난 3월 법원의 판결로 출국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지난달 초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다시 검찰, 법무부로부터 출국정지를 당했다. 카젬 사장에게 계속 출국정지 조치를 내리는 이유는 지난해 7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수사를 하기 위해서라는 게 검찰 측 논리다.
그가 출국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 GM 본사에 방문해 반도체를 충분히 배정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부족으로 지난 2월부터 인천 부평2공장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서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언급됐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차량용 반도체를 기존 가격보다 2~10배에 사오려고 해도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차량용 반도체 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구하러 미국에 다녀온 뒤 출국정지를 당한 카젬 사장은 이 얘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카젬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보이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행사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면서부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기자의 어떤 질문에도 “딱히 할 말은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검찰과 법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위기를 공감했던 자동차의 날 기념식에 반도체를 구하려해도 출국할 수 없는 카젬 사장이 참석한 아이러니는 한국GM의 답답한 상황 그대로다.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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