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는 못 잡고 '몸집'만 불리려는 경찰

입력 2021-05-12 17:22   수정 2021-05-13 09:03


경찰이 부동산 범죄 수사를 전담할 조직을 새로 꾸리기로 했다. 갈수록 전문화하는 부동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국가수사본부가 중심이 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의 ‘공직자 투기 의혹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경찰이 조직 규모를 키울 궁리부터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청은 12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특수본의 공직자 투기 의혹 수사 현황과 부동산 전담 수사팀 신설 방안을 보고했다. 전국 7개 시·도 경찰청에 40명이 참여하는 전담 수사팀을 만들고, 국수본 안에도 정원 3명의 전담 부서를 꾸린다는 내용이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가 제한되면서 경찰의 책임 수사가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수사 성과가 더딘 상황에서 조직만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3월 10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에 대한 국민 여론을 의식해 특수본을 ‘매머드급’으로 꾸렸다. 국수본을 중심으로 15개 시·도 경찰청 인력과 국세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파견 인력이 동원됐다. 출범 당시 770명이던 수사 인력은 현재 1500여 명으로 늘었다.

출범 두 달을 넘긴 특수본은 그동안 2082명을 내사·수사했다. 이 중 219명을 검찰에 넘겼지만, 구속 대상은 13명에 그쳤다. 더구나 내사·수사 대상 가운데 80%는 일반인이다. LH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땅투기 의혹과는 거리가 먼 기획부동산 사건이 절반(963명)에 달한다.

고위공직자 및 국회의원 수사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의 본래 목적인 ‘공직자의 투기 의혹 규명’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수본 출범 후 사실상 첫 대형 사건인데,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에 비해 수사 실적은 초라하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상설 감시 기구인 ‘부동산거래분석원’ 출범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분석원은 부동산 법령 위반사항을 조사하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막강한 정보력을 갖게 될 부동산분석원이 생기는 마당에 경찰이 굳이 전담 조직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12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김창룡 경찰청장과 최승렬 경찰청 국수본 수사국장을 향해 질타를 쏟아냈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내사·수사 대상자 중 민간인이 80%를 차지한다”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보다 민간인 쪽으로 수사가 흐르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오영환 민주당 의원도 “투입한 인력에 비해 지나치게 수사가 더디다는 말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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