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부총리와 국무위원, 대학·유관기관까지 총출동시켜 지원 의지를 강조했음에도 ‘숫자 부풀리기’와 ‘과잉 홍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민간에서 10년간 ‘510조원+α’를 투자하기로 했다지만 기업의 팔을 비틀어 숫자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 계획에다 10년 안에 불투명한 투자 구상까지 탈탈 털었을 뿐 정부 예산과 행정지원 조치는 미미해서다.
핵심 대책인 세액공제를 보더라도 ‘R&D의 40~50%’를 거론했지만, 미국은 전체 설비투자의 40%가 공제 대상이다. 나아가 미국은 반도체 R&D 투자에 연방정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국방수권법까지 개정하고 지난 3월 500억달러(약 57조원)를 배정했다. 중국 정부도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2025년까지 1조위안(약 170조원)을 퍼붓는 계획을 집행하고 있다.
뒷북 대응에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불만도 크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를 전략물자 및 안보 문제로 보고 가용재원을 총동원한 지 오래다. K반도체 전략은 지난달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시작으로 불과 한 달 만에 급조됐다. 어김없이 등장한 ‘연대·협력 협약’에도 냉소가 많다. 연대와 협력이라는 모호한 수사가 아니라 반도체 기업들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도록 실질적 인센티브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란 위상에는 착시가 많다. 매출 1조원 이상인 반도체 기업이 7곳으로, 미국(32곳)은 물론 대만(21곳) 중국(17곳)보다도 적다. 기술 면에서도 위기다. 차세대 인공지능(AI)과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은 선진국의 60% 선에 불과하다. 메모리도 선두인지 불확실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삼성전자 평택공장의 송전선 공사에만 5년이 걸린 게 불과 두어 해 전 일이니 ‘K반도체 전략’에 박한 평가가 나오는 건 정부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만하다. 자율주행차 바이오 등 다른 미래 먹거리 산업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말만 앞세우고 기업의 노력과 성취에 숟가락 얹는 정부의 행태를 수없이 봐왔다. 이번만큼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첩첩 규제 해소를 위해 기업과의 대화를 늘리고 세액공제율과 고용인센티브 제고 등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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