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171조원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 투자한다. 2019년 공개한 133조원 규모 투자 계획에 38조원이 추가됐다. 대만 TSMC를 빠르게 추격해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비전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품귀와 장기호황(슈퍼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해 최첨단 D램·파운드리 라인 건설이 예정된 경기 평택 3공장의 완공 일정은 2022년 하반기로 앞당겼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와 파운드리 리더십 확보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71조원의 대부분은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투자에 투입된다. 세계 1위 TSMC와의 격차를 줄이고 세계 1위 목표를 조기 달성하기 위해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TSMC의 시장점유율은 56%, 삼성전자가 18%로 격차가 작지 않다. 하지만 선폭(반도체 회로 폭) 1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공정’에선 두 회사가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대규모 투자를 통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도 주력할 계획이다. 국내 파운드리 시장이 커질수록 잠재 고객사인 한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들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팹리스가 늘어날수록 시스템 반도체 전반의 경쟁력이 개선되는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김기남 부회장은 “반도체산업이 대격변을 겪는 지금이야말로 장기적인 비전과 투자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며 “외부의 도전이 크지만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향후 D램 초격차를 위해 첨단 제품 양산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의 장점을 합친 HBM-PIM, D램의 용량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CXL D램’ 등 미래 메모리 솔루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부회장은 “한국이 선두를 지켜온 메모리 분야에서도 추격이 거세다”며 “수성에 힘쓰기보다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도록 ‘초격차’를 벌리기 위해 선제적 투자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투자 확대는 가전·모바일·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리고 국내 팹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업계에선 충북 청주사업장에 남아 있는 파운드리 설비 공간에 8인치 웨이퍼 기반 라인을 구축하거나 국내 및 해외 중소형 파운드리 M&A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박 부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를 진두지휘한 M&A 승부사”라며 “조만간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반도체 패키징 업체 네패스는 최대 1조원 규모 ‘최첨단 패키징 플랫폼’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패키징은 반도체를 전자기기에 연결할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하는 공정이다. 이날 행사엔 팹리스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도 등장했다. 모건스탠리 출신인 박 대표는 IBM 등에서 일한 AI 반도체 개발자들과 함께 지난해 6월 리벨리온을 창업했다. 박 대표는 “명품이라 불릴 수 있는 AI 반도체를 제조하겠다”고 강조했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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