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령까지 어겨가며 중고차 시장 개방 요구에 침묵하는 가운데, 최근 중고차 허위매물·강매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소비자 사연이 알려지며 비판이 일고 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결론이 1년 넘게 미뤄지고 있다.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중고차 판매업은 2019년 2월 보호 기간이 종료되며 대기업 진출이 가능해졌다.
이에 기존 업자들은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는 산업 규모가 크고, 소비자 후생 차원에서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달했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생계형적합업종법)은 중기부가 동반위의 추천(적합 또는 부적합)을 받은 날부터 3개월, 연장시 최대 6개월 이내에 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및 고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6일까지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법령에 정해진 기한을 1년 이상 넘긴 것이다. 상생협약 도출을 위해 수십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게 중기부 입장이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이뤄지면 기존 업자들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상생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지만, 중기부가 후폭풍을 우려해 시한을 1년 넘게 미루며 물밑 작업 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중고차 시장에 방치된 셈이 됐다.
지난 11일 충북지방경찰청은 허위 매물을 미끼로 중고차를 강매한 중고차 딜러 A씨(24) 등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허위 매물을 온라인에 올려놓고 찾아온 구매자 B씨에게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차를 강매했다. 매매 계약을 체결한 뒤 차량에 급발진 등 하자가 있다며 계약 철회를 요구하도록 유도하고, 약관을 이유로 출고비용 환불이나 대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다른 차량 구입을 강요하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문신을 보여주며 위압감을 조성했고, 다른 차량을 구입할 돈이 없다는 구매자를 8시간 동안 감금하고 강제로 대출까지 받게 했다. 큰 충격을 받은 60대 B씨는 지난 2월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중고차를 강매 당한지 20여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중고차 매매 집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 당해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이같은 미끼·허위 매물뿐만 아니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 피해는 금융사에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중고차 매매 시장의 불투명성과 자동차 담보대출 취약성을 악용한 사기가 활개를 치자 주의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주요 유형으로 렌트카 사업의 수익금 또는 중고차 수출의 이익금을 제공하겠다며 명의 대여와 차량 인도를 요구하거나, 저리의 대환대출이나 취업 또는 현금 융통이 가능하다며 중고차 대출계약을 요구하는 수법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중고차 대출 명의를 대여해달라는 제안은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며 "금융사와 중고차 대출 계약을 진행할 경우 본인 명의로 체결된 모든 대출계약의 원리금 상환의무는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고차 대출을 받으면 저리의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는 반드시 차단하고, 현금융통을 제안하며 금융사와의 대출계약과 별도의 이면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거나, 금융사에 거짓 답변을 유도하는 경우에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는 지난 4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중고차 시장 완전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개시했다. 온라인 서명 운동은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서명 참여자가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지지 받고 있다.
참여자들은 서명 운동 참여와 함께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만과 실제 피해 사례를 함께 남겼다. 허위·미끼 매물과 사기 판매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한 참여자는 "중고차는 고가 상품임에도 유일하게 소비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시장"이라며 시장 개방을 촉구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시장 혼란과 소비자 피해 방지 차원에서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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