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책임자와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에 하한(1억원)을 두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지금은 하한 없이 상한(10억원)만 정해져 있는 조항을 악용해 법원이 터무니없이 낮은 벌금을 선고할 수 있어 그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벌금액수를 산정할 때 판사가 산재사고 전문가, 유가족 등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양형 특례 조항’도 포함됐다.
작년 초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한국의 사업주 책임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내년 1월 8일부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한 번의 사고만으로도 기업인은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이란 심각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형법상 과실치사에 ‘2년 이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 업무상 과실·중과실치사상에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과 비교하면 형량 가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여기에다 법인에 50억원 이하 벌금 및 5배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은 별도다. 경영자와 법인을 이처럼 한꺼번에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경영책임자는 하청회사 사고에도 민사상 공동책임 정도가 아닌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법조문마저 모호해 국가형벌권 남용 소지가 다분하다. 쿠팡이 몇 달 전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강경 규제 입법을 한국만의 ‘특수한 위험’으로 명시하면서 중대재해법을 그런 사례로 적시한 이유다.
기업인이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하고 예방 노력을 강화해도 산업현장에는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현장 여건은 천차만별이고 근로자의 과실 요인도 있을 수 있어서다. 그 모든 책임을 경영진과 원청기업에 떠넘기는 것은 처벌만능주의의 극치다. 과잉 처벌이 ‘산재 제로(0)’를 만드는 요술방망이인 양 여론을 호도해선 안 된다. 거대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를 좀 안다고 자처하는 제1야당이 여당 주장에 맞장구치는 모습도 안쓰럽다. 노동계 표심에 휘둘리는 무책임 정치를 하면서 세상 정의를 독식한 듯 생색내는 정치인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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