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외곽지역 아파트에서 전셋값과 집값이 비슷한 '무갭투자'가 성행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공시가가 1억원 미만이면 다주택자 취득세 부담이 없는데다, 아파트는 시세가 하락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단기간 투자금이 거의 없이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을 비롯해 경기 남부권 투자자들이 최근 많이 몰려간 곳은 안성의 A아파트다. 2615가구의 대단지로 20년이 됐지만, 주변의 개발 호재와 더불어 투자자들이 몰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아파트에서 1335가구를 차지하고 있는 전용 49㎡ 매매가와 전세가는 모두 1억원 안팎에 형성됐다.
이달들어 이 주택형의 매매계약은 11건, 전월세 계약은 7건에 달한다. 매매가는 9500만~1억1000만원에 나왔다. 신고된 계약을 기준으로만 집계해도 올해들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지난 1월에는 21건, 2월에는 17건이더니 3월 30건, 4월 44건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1월에 최저 매매가가 80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3000만원가량 오른 셈이다.
주변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전용 49㎡는 방 2개에 거실이 있는 타입으로 1~2인 가구가 선호하고 있다. 평택이나 안성 등지에 신축 아파트들의 전셋값은 높은데다 오피스텔들은 월세가 많다보니 세입자 수요는 꾸준하다. 반면 집값이 크게 오르지는 않고, 소액이다보니 손바뀜이 잦다는 설명이다.
이 단지의 B공인중개사는 "작년말에서 올해초만 하더라도 40~50대의 중년층들이 매수를 알아봤었는데, 최근에는 젊은 신혼부부나 총각들(미혼 남성들) 전화가 많다"며 "이 아파트 뿐만 아니라 주변에 1억원 안팎의 아파트들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오산, 안산, 포천, 의정부시, 동두천시 등지에서 이러한 무갭투자가 포착되고 있다. 소형 주공아파트가 몰려 있는 대단지에서다. 오산에서 오랜기간 공인중개사를 했다는 김모씨는 "작년만 해도 주변에 평택이나 화성에 비해 집값이 안올라서 속상해 하는 집주인들이 많았다"면서도 "올해들어서는 집값도 오르고 오래된 아파트까지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서는 등 분위기가 급반전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래된 아파트에 무갭투자자들이 몰려가는 까닭은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는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미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는 취득세 중과를 적용되지만,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는 제외된다. 기존 취득세 1%만 부담하면 된다.
문제는 정부가 단속의지를 보이고 사례까지 발표했음에도 여전하는 점이다. 취득세법을 악용한 사례는 지난달 국토교통부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이 발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약 3개월 주택시장 과열양상이 두드러졌던 창원·천안·전주·울산·광주 등 15개 주요 지역에 대한 실거래 기획조사 결과였다.
외지인들이 취득세가 중과되지 않는 공시가격 1억원 이하의 저가주택을 ‘싹쓸이’했던 사례들이 발표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경남 창원 성산구의 아파트 6채를 총 6억8000만원에 매수하면서 거래금액 전액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인계좌에 이체한 뒤 낸 경우였다. 개인이 사들인 주택이지만, 법인 명의로 산 것처럼 계약·신고한 사례다. 이처럼 외지인이 법인 명의를 이용해 저가주택 다수를 매입한 사례 6건 등 법인을 이용한 편법·불법행위 73건도 적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최근과 같은 무갭투자는 '필요악(惡)'이라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누군들 20년 넘은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고 싶겠냐"라며 "전셋값과 같아도 집을 안사는 세입자들의 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나은 주거환경(아파트)에서 낮은 가격에 세금부담없이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주택으로 살다가 청약을 기대할 만큼 여유가 있는 집들이 많지도 않다고 귀띔했다.
B공인중개사는 "외지 투자자들이 들어오면서 집값이 좀 오른 건 있다"면서도 "1억원으로 취득세 제한을 둬서 집값 상승에 제한이 생긴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투기꾼 잡겠다는 건 좋은데, 이 때문에 집값이 뛰고 전월세가 오른 적이 한 두번 이었느냐"라고 우려를 덧붙였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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