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찍는 모던 붓다, 나와 당신이었네

입력 2021-05-18 17:11   수정 2021-05-19 00:35


화려한 색의 배경 위에 커다란 연꽃들이 피어 있다. 화면 곳곳에는 스무 명이 넘는 부처가 저마다 개성을 뽐낸다. 반가사유상 등 전통적인 불상 모양도 있지만 베개를 베고 한잠을 자거나 팔짱을 끼는 등 보통 사람 같은 부처가 대부분이다. 치마를 입고 웃으며 인사하는 듯한 부처, 이 모든 광경을 ‘인증샷’으로 남기듯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부처가 특히 눈에 띈다. 우주 삼라만상에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를 담은 황주리 작가(64)의 작품 ‘식물학’(2016)이다.

19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황 작가의 ‘그대 안의 붓다’전이 열린다. 현대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스트레칭을 하고, 아기를 돌보는 모습의 부처 그림 94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황 작가는 국내 미술계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다. 화사한 원색으로 일상을 포착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에세이와 소설책도 펴내 ‘글 쓰는 화가’라는 별명도 있다. 그가 부처 그림을 발표하는 건 30년 넘는 작가 생활 중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스리랑카를 찾았다가 수많은 불상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박물관에서 본 불상 1000여 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곳에 살았던 농민들의 얼굴이 불상에 조각돼 있었지요. 모든 인간과 사물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재해석한 ‘모던 붓다’들도 바로 저 자신과 우리 모두의 자화상, 즉 ‘그대 안의 붓다’입니다.”

전시작 중에서는 반가사유상을 변주한 자세의 부처 그림이 가장 많다. 지난 10여 년간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며 부처를 보고 그려왔지만 한국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가장 아름다웠다는 설명이다. “붓다를 그리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까운 이들과 반려견을 잃었을 때 특히 그랬지요.”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부처 등 독특한 주제만큼이나 그림이 그려진 매체도 특이하다. 돌과 시계, 콜라병 뚜껑처럼 만든 목판, 어머니가 혼수용으로 장만했던 접시와 쟁반에도 붓다 그림을 그렸다. 이 모든 물건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에서다. 다만 황 작가는 자신이 불교도라기보다는 무신론자에 가깝고, 불교의 분위기와 부처의 가르침을 좋아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종교를 떠나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 부처 그림을 통해 연민과 위로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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