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예산 부족’ ‘특혜 논란’ 등의 이유를 대며 국내 5개 백신 업체 어느 곳과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당장 수천억원의 개발비가 필요한 업체들은 할 수 없이 해외 지원을 받아 백신을 개발하고 이들에 우선 공급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백신 선구매 및 개발 지원 명목으로 화이자 등 다수 업체에 14조1700억원을 지원했고, 이것이 백신 조기 개발 및 다량 확보로 이어졌다. 한국 정부의 국내 백신업체 지원액은 1177억원으로 미국의 0.8%에 불과하다. 모호한 이유로 지원을 머뭇거리는 사이 국산 백신마저 해외로 뺏길 판이다.
정부의 백신행정은 헛발질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말 백신 늑장 확보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엉뚱하게도 ‘부작용’을 핑계로 댔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맞을 이유가 없다” “백신 안전성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사과하는 대신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국산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다 백신을 못 구했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국내 업체에 ‘짠물’ 지원에 그친 것을 보면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정부는 선구매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을 핑계 대기도 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뿌려댄 천문학적 돈을 생각하면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결국 정부가 백신 확보의 중요성이나 절차를 몰랐거나 알았어도 정치적 이유 등으로 확보를 서두르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접종이 시작된 뒤에도 혼선은 계속됐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 접종 여부와 대상을 두고 정부는 계속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부작용과 백신의 연관성 인정 및 보상에도 문제가 많았고, 해외 접종자의 자가격리 면제 여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백신을 맞겠다는 국민이 61%에 불과하고 접종률에서 후진국이 된 것도 숱한 정책 난맥상으로 불신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치를 배제한 과학,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가 주도하는 백신정책이라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외국산 백신 도입도 시급하지만, 코로나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국산 백신 개발을 위해 전폭적 지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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