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뉴욕증시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횡보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뉴욕증시와는 다르게 움직이다보니 예측도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적으로 주식 투자자들 상당수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간밤 뉴욕증시 상황을 확인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관련 이벤트의 영향이 가장 빨리 반영되는 뉴욕증시의 등락이 한국증시를 비롯한 전 세계 증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7~18일에는 오히려 코스피가 뉴욕증시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뉴욕증시는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공개를 앞두고 ‘눈치보기’ 장세를 연출한 반면, 아시아 증시는 대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크게 출렁이면서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이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에 먼저 반영된 결과다.
20일 한국증시의 방향성도 뉴욕증시 내 주요 지수의 등락만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8~19일(현지시간) 모두 뉴욕증시가 하락해 안심하긴 어렵다. 다만 간밤 뉴욕증시는 크게 빠진 뒤 낙폭을 줄이며 마감했다. 특히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1.98% 상승한 점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코스피에 긍정적이다.
간밤 뉴욕증시에서 주요 지수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위험자산 가격 하락 우려에 휘청거렸다. 이에 더해 이날 공개된 4월 FOMC 의사록에는 경제가 빠르게 개선된다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재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시장에 부담을 더했다. 다만 장 막판에 공포감이 진정됐고, 장중 낙폭이 1.74%에 달했던 나스닥지수는 보합권까지 회복했다.
1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일 대비 164.62포인트(0.48%) 하락한 3만3896.04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2.15포인트(0.29%) 내린 4115.68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90포인트(0.03%) 빠진 1만3299.74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가상화폐 가격 급락이 장 초반 뉴욕증시에 충격을 줬다. 중국 당국이 지난 19일 자국 금융권을 향해 가상화폐 관련 서비스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자 비트코인 가격은 3만달러선이 무너지기도 했고, 이더리움 가격도 40% 넘게 빠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윗에서 비롯된 급락세가 진정되기도 전에 중국 정부가 다시 한번 충격을 준 것이다. 이 충격은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위험자산 전반으로 퍼지며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5% 넘게 급락했고, 이는 에너지기업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관심을 모았던 4월 FOMC 의사록은 시장의 공포를 배가시켰다. 지난달 27~28일 개최된 FOMC 정례회의 회의록에는 “경제가 위원회의 목표를 향해 계속 빠르게 나아간다면 다가오는 회의에서 어느 시점에 자산 매입 속도를 조정하는 계획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62% 수준에서 1.69%까지 치솟았다.
다만 공포의 영향력은 장 마감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 증시는 암호화폐 시장이 붕괴되자 상품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매물이 출회돼 하락출발했지만, 일부 투기성 종목을 재외하고 대부분 종목이 안정을 찾으면서 낙폭을 축소했다”며 “실적 개선이 뚜렷한 기술주와 반도체 업종이 (반등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 증시에서 실적 개선 기대가 높은 종목을 중심으로 낙폭을 축소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증시는 하락 출발 후 실적 개선 기대가 높은 종목 중심의 매수세가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4월 CPI로 인한 충격이 진정된 뒤부터 지난 18일까지 글로벌 증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벤트는 대만의 코로나19 확산이었다. 코로나19 청정국으로 인식되던 대만에서 갑자기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안 그래도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이 이슈로 부상한 마당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있는 대만에서의 감염병 확산이 증시에 공포감을 준 것이다.
지난 17일 코스피는 직전 거래일 대비 0.60% 하락한 3134.52에, 대만 가권지수는 대비 2.99% 하락한 1만5353.89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상승세를 보이며 전거래일 대비 0.62% 오른 3173.01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한 시간 뒤 개장한 대만 증시가 급락하자 함께 무너졌다.
주말이었던 지난 15~16일 대만의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고조된 탓이다. 대만에서는 지난 15일에만 코로나19 확진자가 180명 늘어났다. 최근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전까지 대만에서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명 미만이었지만, 갑자기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만 보건당국은 타이베이시와 신베이시의 방역 경계 등급을 3급으로 올린다고 16일 발표한 데 이어, 17일 오후 7시부터는 대만 거류증을 소지하지 않은 외국인의 입경을 일시 중지했다.
이는 대만에 있는 공장의 가동중단(셧다운) 우려로 이어져 가권지수를 끌어내렸고, 이는 코스피와 뉴욕증시에도 차례로 영향을 미쳤다. 이날 밤 개장된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이슈에 큰 영향을 받는 기술주 중심으로 구성된 나스닥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38% 하락한 1만3379.05로 마감됐다. 장중에는 낙폭을 1.23%까지 키우기도 했다.
서 연구원은 17일 뉴욕증시에 대해 “아시아 코로나19 사태 등의 영향으로 매물이 출회된 가운데 시장 참여자들은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관망세가 짙은 모습이었다”면서도 “미국의 백신 접종이 확대된 가운데 유럽에서도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부각돼 장 후반 낙폭을 축소했다”고 분석했다. 뉴욕증시가 장 막판 낙폭을 축소한 영향을 받아 지난 18일 한국과 대만 증시는 각각 전거래일 대비 1.23%와 5.16%가 오르는 강한 반등세를 보였다.
한국 시장 참여자들은 오는 21일 개최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의제에는 반도체·이차전지 협력 등 경제 관련 사안이 대거 포함됐다. 여기서 보건 이슈인 코로나19 백신 관련 의제도 한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전까지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핵문제, 동아시아 정세 등 안보 이슈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코로나19 백신 협력 사안은 증시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의 위탁생산(CMO)를 맡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 회사 주가가 급등하며 지난 14일에는 94만8000원까지 올라 코스피 시가총액 규모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규모 1·2위는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다. 국내 증시 참가자들이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반도체 협력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참가 기업에 미국에 투자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한미정상회담 기간동안 삼성·SK·LG그룹의 주요 경영진들도 비공식 경제사절단 형태로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4대그룹이 미국에 투자했거나 투자를 검토 중인 규모는 40조원에 이른다. 이들 기업이 미국 현지 투자의 대가로 받을 인센티브에 따라 주가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한편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와 함께 구성한 협의체인 쿼트(Quad)와 관련된 한미정상회담의 협상 결과도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에게 양쪽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문제가 될 수 있어서다. 특히 한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받아들인 뒤 중국으로부터 장기간 경제보복을 당한 바 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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