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오늘 ‘지구의 마지막 아기’ 디에고 리카르도의 죽음에 충격에 빠졌습니다. 18년4개월의 생애 끝에 삶을 마감한 ‘베이비 디에고’는 인류가 맞이한 불임이라는 재앙의 상징이었습니다.”
2027년 영국 런던, 시민들은 화면 속 청년의 사진을 보며 오열한다. 인류는 2009년 이후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재앙을 맞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오는 멸종 앞에 인류는 무너져간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뉴욕 한복판에 핵폭탄이 터져 폐허로 변했고, 잠시 등장하는 서울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상태다. 신에게 용서를 비는 신흥 종교 집단이 창궐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그래비티’와 ‘로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받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절망적인 세상을 그리는 디스토피아물로, 저출산을 넘어선 ‘무출산’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 처참한 인류의 생활을 담아낸다. 사실상 경찰국가로 변한 영국은 정부의 철권통치로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지만 경제는 붕괴에 이르렀다. 생기를 잃은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낙서가 가득하고, 시민들은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노후화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런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슬럼이 된 도시의 빈민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약탈하기 위해 달려든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부분이 노인이다.
칠드런 오브 맨 속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실에서는 평균수명 연장과 개발도상국들의 높은 출산율로 세계 인구가 아직은 증가하고 있지만, 영화 속 지구는 사망자 한명 한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을 정도로 인류 소멸 속도가 빠르다.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출생은 전무하다.
전통 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노동력과 토지, 자본을 꼽는다. 안타깝게도 모든 인간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활동에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는 만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사람을 인구경제학에서는 ‘생산가능인구’로 정의한다. 전체 인구가 늘더라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다면 오히려 생산가능인구가 짊어져야 하는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그림1>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17년에 3757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돌아서 2047년에는 2562만 명으로 쪼그라든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사회의 생산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재앙이다. 이들은 생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9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소비지출은 <그림2>에서처럼 40대에 정점을 찍고, 60대부터는 20대보다 낮은 수준으로 추락한다. 나아가 고령층은 고정 소득이 적고, 남은 기대수명도 짧아 저축률 역시 낮다. 이는 경제 전체의 투자 위축과 장기 성장성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데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교착 상태에 빠진 영화 속 영국 정부는 가장 극단적인 해결책을 꺼내든다. 국민에게 자살약을 배급하고, 방송 매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살약의 효과를 홍보한다. 이는 강제적으로 사망률을 끌어올려 고령화의 부담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전범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②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 등을 불러오는 인구폭발, 경제활력 감소와 공동체 유지 어려움이 예상되는 인구감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인류에게 부담스러울까.
③ 고령인구에 대한 생산가능인구의 경제적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인 노년부담비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한국이 이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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