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광풍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중국, 미국 등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주요 코인 시세가 반토막나는 바람에 월급을 다 털리고, 레버리지 투자로 수십억원을 날렸다는 식의 얘기가 끝없이 나온다. 하지만 수백배 등락에 익숙한 터라 '반토막' 정도는 언제든 회복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게 암호화폐 시장이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약 500만명)의 절반이 단기 고점이라할 1분기에 뛰어든 것도 럭비공 같은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이런 암호화폐 투자를 제도화하려는 관련 입법들이 추진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암호화폐 발행 등 가상자산업을 하려면 금융위원회에 신고 또는 인가를 받도록 하고, 문제 발생시 이용자 자산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 내용 중엔 암호화폐 거래소가 불공정 거래 행위를 상시 모니터링하게 하고, 가상자산 예치금을 고유 재산과 구분해 별도 예치하게 하는 등 마치 주식투자자 보호와 같은 시늉을 낸 부분도 있다. 누구나 암호화폐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어 국내에 관련 거래소만 200개가 난립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직원 몇명 두고 코인을 거래하는 영세 거래소들이 과연 불공정 행위를 매일같이 깊이 들여다보고 예치금 계정분리를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물론 사회문제화할 가능성이 높은 암호화폐 '빚투' 현상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도록 정부가 관련 주무부처를 정하고, 투자자들을 각종 불공정 행위로부터 보호할 법제도도 하루빨리 완비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급격한 집값 상승에 따른 20~30대의 좌절감, 코인이 아니면 '역전 찬스'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젊은 세대의 위기감(이른바 포모 증후군)을 사회가 치유하고 보듬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인사들이 최근 이런 발언들을 쏟아내기 경쟁하듯 하고 있다.
이는 일관되게 '암호화폐는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와도 온도차가 크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잘못된 길"이라 표현하듯, '투기적 성격'이 짙은만큼 이를 이용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는 게 정부 분위기다. 4·7 재·보궐선거 참패의 연령대별 요인 분석에서 20~30대의 지지 이탈에 심각성을 느끼고, 암호화폐 이용자 보호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여당과는 거리가 좀 있다.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올초까지만 해도 부동산 가격 급등을 몰고온 주범(主犯)을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세력이라며 발본색원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온 여권이 맞나 싶다. 아무래도 집을 장만하고 더 큰 집으로 옮겨가고, 노후대비를 위해 주택 거래를 적극 하게 되는 나이가 40~50대다. 그런데 이들은 조금만 레버리지를 일으켜도 '투기세력'으로 몰아가고, 사회악의 근원인 것처럼 엄단 의지를 밝힌 게 불과 몇개월 전까지 여권의 모습이다.
암호화폐 투자로 내몰리는 청년층(20~30대가 60%)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자는 것을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명백한 '투기행위'를 어떻게든 투자손실 안생기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가는 것은 분명 문제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타이밍을 잘 잡아 수익을 크게 올리면 그것은 전적으로 투자자 몫이고, '폭탄돌리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투자자 보호는 철저히 해주겠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율배반이다. 내년부터 암호화폐 양도차익에 20% 과세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미스매치를 해결하려는 고육책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암호화폐도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상품인데 상장 규정 자체가 없고, 시장 감시는 사각지대에 놓였으며, 그 결과 작전세력이 판을 치는 현실은 시급히 개선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마치 라임 사태 등에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원금 수준의 보상을 해준 것처럼 투자자 책임에 대한 강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투기판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에게 손실을 경고하고, 투자자 책임을 강조하며,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의 출현 때 경쟁력 저하 등을 알려내는 작업은 소홀한 느낌이다.
글로벌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에 부동산 투기는 절대 근절해야 하고, 암호화폐 투기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인지 정말 어리둥절해진다. 투자자들도 겹겹이 둘러쳐진 부동산 거래 감시망 속에 있기 보다, 암호화폐 시장으로 투자처를 옮길 유인이 더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시장이 불안할 때 정부와 검찰, 경찰 등이 부동산 투기 일제 단속을 벌이던 것을 이제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이란 기구까지 설립해 집 한채 사려는 사람들의 금융 및 자산 정보를 다 들여다보고 사실상 '거래 허가제'에 준하는 규제를 할 모양이다. 집은 물론이고 주식과 암호화폐에서 빚투한 결과, 440조원에 달한다는 2030의 부채(금융권 대출 등)는 어떻게 디레버리징(부채 감축)해 나갈 지 정말 큰 숙제가 남았다.
장규호 논설위원
관련뉴스